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9) - 추회(秋懷)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9) - 추회(秋懷)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11.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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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꽃 잎 어이해 가지 사이 새로 피울 수 있겠나 : 秋懷 / 청묘거사 차천로

봄 산이 가을산보다 낫다고 한다. 봄을 새잎을 돋고 꽃을 새로 피우기 때문이다. 그에 못지않게 가을 산은 열매를 맺고 떨어지고 그리고 쉬어야 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봄 못지않게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흔히 까치밥이라고 했다. 열매가 떨어지지 못해서 애잔하게 달려있고, 남은 한 두 잎도 외롭게 달려 있어 분주하다. 봄 산이 가을 산보다 꼭 낫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니, 떨어지고 돋아나고 한가한 때는 없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懷(추회) / 청묘거사 차천로

봄 산이 가을 산보다 꼭 낫지는 않으니

떨어지고 돋아나고 한가한 때가 없는데

묵은 잎 매달린다면 새 꽃잎이 필수 있나.

春山非必勝秋山 擺落生成覺未閒

춘산비필승추산 파락생성각미한

舊錄如曾留木末 新紅安可着枝間

구록여증류목말 신홍안가착지간

새 꽃 잎 어이해 가지 사이 새로 피울 수 있겠나(秋懷)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청묘거사(淸妙居士) 차천로(車天輅:1556∼1615)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 산이 가을 산보다 꼭 낫다고는 하지 않으니 / 떨어지고 돋아나고 한가한 때는 없겠구나 // 묵은 잎이 지금도 나무 끝에 매달렸다면야 // 새 꽃 잎 어이해 가지 사이 새로 피울 수 있겠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을이면 품은 생각 // 가을철에 느낌이 있어 일어나는 온갖 생각]으로 번역된다. 가을이 되면 또 한 해를 보내는 생각 때문에 온갖 생각이 교차된다. 가을이 되면 봄에 계획했던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뉘우침과 죄책감으로 온갖 잡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가을이 되면 차가운 겨울철 보낼 일을 생각하며 멍한 생각과 걱정이 앞선다. 가을에 품은 생각들이다. 시인은 이러한 가을의 깊은 회환을 머릿속에 꽉찬 생각들을 시상으로 이끌어냈을 것이다. 봄 산이 가을 산보다 꼭 낫지는 않겠으니, 떨어지고 돋아나고 한가한 때는 없겠다는 되돌아 본 시상을 이끌어냈다. 지난봄과 무더웠던 여름을 다시 생각해 보이고 있다. 화자는 낙엽이 다 떨어지고 없는데 묵은 잎이 지금도 나무 끝에 매달렸다면, 새 꽃잎은 어이하여 가지 사이로 새롭게 피울 수 있겠나를 떠올리고 있다. 묵은 잎이 매달려있으니 새잎이 마중 나가 지 못해 잎을 피울 수 없을 것이라는 시상을 떠올렸다. 이 가을은 가을로서 끝나야지 새 봄이 돌아와 새싹을 틔울 때는 새잎이 잘 나오도록 해야 된다는 시상주머니를 가만히 매만지고 있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 산이 가을보다 못해 떨어지고 돋아나며, 묵은 잎이 떨어져야 새잎들이 돋아 올라’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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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청묘거사(淸妙居士) 차천로(車天輅:1556∼1615)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오산(五山), 난우(蘭嵎), 귤실(橘室) 등으로 쓴다. 차식의 아들, 차운로의 형이다. 삼부자 모두가 일세에 이름 높은 문사였다고 전하며, 그래서 세인들로부터 ‘삼소’라 불리웠다. 서경덕의 문인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春山: 봄 산. 非必: 반드시 ~은 아니다. 勝: ~보다 낫다. 秋山: 가을 산. 擺: 열리다. 落: 떨어지다. 生成: 생성하다. 覺: 깨닫다. 未閒: 한가하다. // 舊錄: 옛 잎. 묵은 잎. 곧 새로 나온 잎은 아님. 如曾: 일찍 ~같다. 留: 머무르다. 木末: 나무 끝. 新紅: 새 잎. 安可: 어찌. 着: 피다. 枝間: 가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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