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목적을 생각한다
사는 목적을 생각한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1.11.0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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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더 많다. 그래서 성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하느님이시니라’라고 말한다. 시쳇말로 세상일이 신에게 달렸다고 풀이해야 하나. 다시 말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다.

사람살이는 수많은 안되는 일 가운데서 되는 일을 찾아가는 행로다. 누구에게나 살아온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지내왔다. 청춘들, 자영업자들 외에도 요즘 다들 앞이 안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날 입때껏 살아남은 것이 운이 좋아서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인생행로가 운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운이란 것에는 나름대로 엄청 노력을 기울인 적공이 전제되어 있다. 어떤 분야에 혼신을 다해 연단을 했을 때 운이 찾아오면 덥석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사는 일이 엄청 어려운 것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이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력도 있어야 하고 운도 있어야 하니 인생살이가 얼마나 힘든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신문에 너무나 자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다. 극단을 선택하는 사람을 놓고 제삼자가 왈가왈부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타인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그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막바지 상황이 있었을 것인데, 그럴 결단을 하겠으면 그 힘으로 삶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타박할 수도 없다. 그 사람에게는 그 선택이 절대한 것이었을지 모르므로.

그렇긴 하나 사람이란 이 세상에 살려고 태어났는데, 자진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지 않다.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다. 나무, 짐승, 꽃처럼 자연이 이 세상에 낸 생명체다. 생명체의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다. 어떤 난관에 당할지라도 기어코 살아남는 것, 그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명한 임무다.

삶에 시달리다보면 대체 사는 것이 무엇인가, 사는 데 목적이 있는가, 하는 풀 수 없는 질문에 부닥칠 때가 있다. 앞길에 높은 담벼락 같은 장애물이 서 있을 때처럼 절망감을 느낀다. 넘어갈 수도, 뚫고 나갈 수도 없는 막막함에 좌절하기 마련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은 삶에서 이렇게 마주하는 실수, 고통, 장애, 슬픔 같은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요인들이 없어지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비밀은 이런 난관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얻기 위해 사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것을 목적인 양 생각한다. 아무런 고통이 없는 지경의 삶. 한 마디로 그런 삶이란 없다.

하나의 난관을 넘어가면 또 다른 난관이 다가온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진화론에 따르면 가령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더 짧게 생긴 것은 수없이 많은 엄지손가락의 장구한 시행착오 끝에 현재 모양의 엄지손가락으로 생겨난 진화의 결과물이다. 손가락들이 생겨나기 전에 어떤 설계도가 미리 주어져 있어서 곧바로 인간의 다섯 손가락의 모양새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도 수많은 실수와 좌절과 고통을 마주하는 속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 살아간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은 행복의 상태가 아니라 그 상태로 가는 과정이다. 삶의 목적은 살아남기의 과정에 있다.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결론에 너무 허무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부자들의 요양소가 있었다. 조용하고 안락한, 풍광이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온갖 맞춤형 보살핌을 받고 있어서 불만이 없었다. 한데 수년이 지난 뒤 요양소에 사는 사람들은 삶이 시들해지고 아픈 사람들이 속출했다. 비교 연구를 해보니 시끌벅적한 곳에 있는 요양소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런 자극, 변화, 활력이 없는 행복한 삶이 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양소 사람들은 시끌사끌한 도시의 요양소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남은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아 결국 그 요양소는 문을 닫았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고통을 헤쳐나가는 과정이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살아남기 위한 길고도 험한 고통스런 행군에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을 나는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고통을 겪는다’라고 바꾸어 읽는다. 수그러들지 않는 대재앙 코로나 사태에서 살아남는 것, 이것 또한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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