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난 길
숲으로 난 길
  • 문틈 시인
  • 승인 2021.10.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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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숲은 절이나 같다. 마음이 불안할 때 절을 찾아가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숲의 적요, 숲의 탈속 분위기가 절간처럼 세상의 풍진을 씻어주는 느낌이다. 숲은 내게 평안을 안겨 준다. 코로나 공포로 삶이 힘겨울 때 숲으로 가서 위로를 받는다.

숲으로 가는 길은 작은 조롱길이다. 바닥에는 낙엽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다. 쉬엄쉬엄 숲길을 걸어가면 발뒤꿈치에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푸르른 잎들이 갈색으로 변한 마른 잎이 되어 떨어져 쌓인 길은 흡사 낙엽으로 된 멧방석을 깔아놓은 것 같다. 한 시절 바람에 살랑거리던, 햇빛에 푸르게 빛나던, 잎새들은 이제 일을 마치고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는 낙엽 한 잎을 주워 들고 바라본다. 가는 실핏줄 같은 잎맥이 드러나 보이고 잎은 말라서 손가락 끝에서 부서진다. 잎은 나무를 위하여 봄 여름 가을 부지런히 햇볕을 안아 나무에게 옮겨주고 이제는 땅 바닥에 떨어져 있다. 잎은 떨어지고 나서도 나무를 위해 할 일이 남아 있다. 썩어서 나무뿌리로 스며들어 거름이 되는 일이다.

숲으로 난 길에서 나는 걸음을 천천히 걷는다. 생각해볼 것들이 많아서다.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긴 겨울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마치 땅 속에 굴을 파고 동면에 들어가려는 동물처럼. 나무들 중에는 밑둥이 움푹 패인 고목들도 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나무들이다. 그리고 한창 젊은 나무들도 있다. 숲도 인간 세상이나 엇비슷하다. 늙어서 나무는 사라지고 젊은 나무들이 뒤를 잇는다. 나무는 무엇하러 생겨나서 숲을 이루고 죽고 태어나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부처는 태양이 왜 생겼는가, 인간은 왜 생겼는가, 그런 것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알 수 없는 경을 설한 것이다. 나는 그저 숲의 나라를 방문한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숲은 한 걸음의 실수도 없이 해마다 계절마다 할 일을 한다. 대체 무엇이 숲을 경영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우주에 안보이는 크낙한 손이 있어 숲의 나라를 이끄는지도 모른다.

낙엽진 숲은 헐렁하다. 푸르름으로 무성했던 시절엔 숲 속은 온통 칙칙한 그늘로 가득했는데 잎을 떨군 숲은 벌거벗은 나무들만이 앙상하게 서 있다. 대체 그 엄청난 푸르름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숲에 들어서서 나는 숲의 비밀에 압도당한다. 인간은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숲에서 깨닫는다.

벌거벗은 채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알몸으로 붙박혀 서 있는 나무들을 보자니 깊은 목상에 잠겨 있는 절간 분위기가 떠오른다. 나무들은 말하자면 지금 할 일을 마치고 예불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무들이 독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엉뚱한 상상이 아니다. 새도, 다람쥐도 오지 않는 나목의 숲은 흡사 경건한 종교, 대법당 같은 느낌 들어서다.

숲 속 어디서 쾅, 하고 큰스님이 법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나는 한 나무에게로 가서 말이라도 걸듯이 친밀감을 드러낸다. 어릴 적부터 든 생각이지만 성자처럼 서 있는 나무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 분명히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나무들끼리, 자연 속에서 소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바람결에 실어서든, 향기를 보내서든 무어라 말을 할 것이다.

숲으로 난 길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성스러운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고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그 시간은 삶의 비밀, 아니 우주의 비밀을 설한 경전 속으로 걸어가는 것만 같다. 한 걸음마다 나는 그 어딘가에 도착한다. 부처가 그랬다. ‘나는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발견했다’고.

부처는 길의 비유를 들어 진리를 설했다. 사람이 광야를 헤매다가 옛 사람이 다니던 옛날 길을 만났다. 그 길을 따라갔더니 사람이 살지 않는 고성(古城)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성을 찾아가서 행복하게 살았다. 숲에는 안보이는 그런 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지극한 상상계를 말하고 말았다. 숲 속 나무들은 닥쳐올 겨울을 대비하여 몸조리를 단단히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숲으로 난 길 끄트머리에서 다시 현실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창마다에서 저녁 불빛들이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마음이 불안하거든 숲길을 걸으라. 거기서 나무들이 경전을 읽는 소리를 들으라. 그대의 마음속으로 범종 소리가 은은히 들리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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