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3) - 증계랑(贈癸娘)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3) - 증계랑(贈癸娘)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10.0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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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선녀가 새옷을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 : 贈癸娘 / 촌은 유희경

촌은의 나이 마흔여덟, 꽃다운 갓 스물 매창과 28세의 나이 차이도 아랑곳없이 매료된 그는 그녀를 꿈속에 나타나 교합했다는 신녀神女로 표현했다. 시집도 못가고 죽은 한을 풀기 위해 아침엔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어 신선이 사는 삼청(玉淸, 上淸, 太淸)에 운우雲雨로 내려온다는 전설 속 무산巫山의 신녀로도 비유했다. 남국의 계랑이라는 이름 일찍이 널리 알려졌고, 글재주와 노래 솜씨까지 서울에 울렸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癸娘(증계랑) / 일송 심희수

남국의 계랑 이름 일찍이 알려지어

글재주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리고

오늘에 그의 참모습 선녀인가 하여라.

曾聞南國癸娘名 詩韻歌詞動洛城

증문남국계낭명 시운가사동락성

今日相看眞面目 却疑神女下三淸

금일상간진면목 각의신녀하삼청

문득 선녀가 새옷을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贈癸娘)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1545~1636)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남국의 계랑이라는 이름 일찍이 널리 알려졌고 / 글재주와 노래 솜씨까지 서울에 울렸었네 // 그럼에도 오늘에야 계랑의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 문득 선녀가 새옷을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시를 지어 계랑에게 줌] 혹은 [계랑을 처음 만난 날]로 번역된다. 시인 촌은과 부안의 명기 매창과 얽힌 일화는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다. 갓 스무살 남짓한 매창(1573년)이 스물여덟살이나 위인 촌은(1545년)의 시상에 반하게 된다. 시심으로 정을 나누면서 이 시를 주었다. 시인은 남쪽 지방 부안에 매창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져 글재주와 노래 솜씨가 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와 만나게 된다. 남국인 남쪽 지방에 계랑이란 이름 일찍이 널리 알려져 글재주와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렸었네라는 시상의 한 주름을 전한다. 될성부른 재목은 그 명성이 일찍부터 알려진다고 했다. 매창도 그랬던 모양이다. 화자는 종장에서 시적인 대반전을 시도해 시격을 높인다. 오늘에야 와서 계랑의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문득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였다는 시상이다. 매창을 선녀로 치환하는 이 한마디(?)에 그 명성을 듣고 한양에서 찾아온 촌은을 만나서 첫눈에 순정을 바치며 벽년가약을 맹세했으니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을 가히 알만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남국 계랑 알려졌고 시운 가사 서울 울려, 계랑의 참모습 보니 내려온 듯 선녀인가’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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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으로 천민출신의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허균은 <성수시화>에서 그를 천인 신분으로서 한시에 능한 사람으로 꼽았다. 특히 조선 삼대 여류시인의 한 사람인 부안 매창의 연인으로 많은 일화와 연정의 시가 남겨지고 있음을 주지할 일이다.

【한자와 어구】

曾: 일찍. 聞: 들었다. 南國: 남쪽. 癸娘名: 계랑이란 이름. 詩韻: 시와 운. 곧 글재주. 歌詞: 가곡과 가사. 곧 노랫가락. 動: 들렸다. 洛城: 서울인 한양. // 今日: 오늘. 相看: 서로 보다. 眞面目: 진면목. 却疑: 문득 의심하다. 神女: 선녀. 下: 내려오다. 三淸: 도교에서 옥청, 상청, 태청의 세 궁임. 한양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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