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2) - 숙반야사(宿般夜寺)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2) - 숙반야사(宿般夜寺)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9.2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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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물결에 떨어지네 : 宿般若寺 / 사명당 유정

과거의 사찰 관행은 요즈음처럼 종정이 임명하는 자리와 사찰에서 근무(?)하는 것이 관례인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스님들이 거처할 곳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승복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다 도달한 곳이 [안식처]요, 불도를 닦았던 곳이 [수행의 장]이었다. 시인도 그랬을 것이다. 반야사에서 하룻저녁을 묵으면서 옛 절에 가을 날씨 맑으니 나뭇잎 누렇게 물들고, 달이 푸른 벽에 비치니 잠자던 까마귀들 흩어진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宿般夜寺(숙반야사) / 사명당 유정

옛 절에 날씨 맑아 나뭇잎에 물들이고

밝은 달이 비치니 까마귀들 흩어지는데

호수에 안개 걷히고 종소리만 들려오네.

古寺秋晴黃葉多 月臨靑壁散棲鴉

고사추청황엽다 월임청벽산서아

澄湖煙盡淨如練 夜半寒鐘落玉波

징호연진정여련 야반한종낙옥파

밤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물결에 떨어지네(宿般夜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유정(惟政) 사명당(泗溟堂: 1544~16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옛 절에 가을 날씨 맑으니 나뭇잎 누렇게 물들고 / 달이 푸른벽에 비치니 잠자던 까마귀들 흩어지네 // 맑은 호수에 안개 걷혀 비단 같이 맑고 / 밤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물결에 떨어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반야사에 묵으면서]로 번역된다. 반야사般若寺는 충북 영동에 있어 천년고찰로 알려진 절이다. 한글종씨인 반야가가 전국 4-5개 정도 있는 것을 볼 때 이 절을 한자어로 [반야사般夜寺]로 쓰여지기도 했다는 말이 있어 확실한 전거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반야사般若寺]로 보고자 한다. 대사가 충북 영동에 있는 반야사를 찾았다. 시인은 선현들이 흔히 원용하고 있는 반야사를 찾아 선경후정의 시상을 끌어내고 있다. 계절의 날씨와 자연의 모습을 원용해 보인다. 옛 절에 가을 날씨 맑으니 나뭇잎이 누렇게 물들고, 달이 푸른 벽에 비치니 잠자던 까마귀들이 흩어진다고 했다. 벽에 푸른 이끼가 끼었던 모양이다. 이 색깔을 보고 까마귀들이 혼비백산 흩어지면서 자리를 옮겼겠다. 화자는 꽉 막혀 끼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모양 속에 차가운 겨울을 품고 밤이 깊으니 종소리가 은은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맑은 호수에 안개 걷혀 비단 같이 맑고, 밤이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물결에 떨어진다고 했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아니라 옥물결에 떨어진다는 시상의 멋을 부려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날씨 맑아 나뭇잎 누렇고 까마귀 흩어지네, 안개 걷혀 비단 같고 밤이 깊은 옥물결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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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1544∼1610)으로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병장이다. 7세를 전후하여 <사략>을 배우고 13세 때 황여헌에게 <맹자>를 배웠다고 알려진다. 1558년(명종 13) 어머니가 죽고, 1559년 아버지가 죽자 김천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의 제자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古寺: 옛 절. 秋晴: 가을 날씨. 黃葉多: 누런 잎이 많다. 月: 달. 臨靑壁: 푸른 벽에 임하다. 散棲鴉: 까마귀들이 흩어지다. // 澄湖: 맑은 호수. 煙盡: 안개가 걷히다. 淨如練: 비단 같이 맑다. 夜半: 밤이 깊다. 곧 한 밤중. 寒鐘: 차가운 종소리. 落玉波: 옥물결에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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