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한복판 속 호남정치 복원을 '능주 선비문화'서 찾는다
대선 한복판 속 호남정치 복원을 '능주 선비문화'서 찾는다
  • 이월태 시민논객
  • 승인 2021.09.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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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태 시민논객(화순 전주 광고 대표)
이월태 시민논객(화순 전주 광고 대표)

미군의 아프간 철수로 수도 카불을 탈레반이 점령하게 됐다.
그러자 한국 대사관에서는 우리나라를 도왔던 아프간인 400여명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한국을 도운 아프간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이른바, '미라클' 전략 때문이었다. 한국 대사관으로서는 “다시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단단히 지킨 셈이다.

한국의 이러한 신의는 비록 외국인이라도 가리지 않는다는 귀중한 진리를 남겼다. 다 같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이 방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에게 방역물품을 전달하였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신의를 지킨 의리(義理)와 일맥상통한다.

과거 한국인들은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생존해왔고, 수 천년 동안 위기를 극복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의(義)를 숭상하는 문화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음을 담박에 알 수 있다. 

이쯤에서 필자의 고향인 능주의 한 초등학교 교가(校歌)에 나오는 가사의 한 대목을 읊조리고 싶다.
“영벽강 푸른 물은 맑기도 하다.… (중략)”라는 이 노래는 113년이 흘렀다. 강산이 11번이나 변하고 말았다. 1905년에 공립학교로 설립됐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호남정신의 중심이었던 능주의 선비문화를 품고 교교히 흐르는 강이 있는데 능주사람들은 이 강을 영벽강(映碧江)이라 부른다. 그만큼 영벽강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옛 능주 선비들이 기꺼히 즐겨 찾았던 누정인 영벽정 등 선비문화 유적이 즐비하다.

영벽강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능주 삼충각(三忠閣) 앞에 흐르는 강이 있는 있는데 이 강을 능주사람들은 충신강(忠臣江)이라고 부른다.
삼충각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 참전한 최경회, 문홍헌 장군과 을묘왜변 당시 절제사였던 조현 장군을 추념하는 정려각(旌閭閣)으로 통한다.

1ㆍ2차 진주성 싸움은 호남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일본의 관백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이순신 제독의 조선수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하자 아예 전라도를 불바다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전라도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인 진주성을 공격한 것이다.
당시를 상상해 본다.
수적으로 열세인 진주성에는 소수의 관군과 진주관민만이 호남을 지키려는 충심 하에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능주 삼충각에서 기리고 있는 최경회, 문홍헌 두 분 장수들이 거병하여 의병부대를 이끌고 주저없이 진주성으로 달려가게 된다.
진주성에서 싸우게 되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들이 바로 호남츨신 의병이다.

이게 호남인들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리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이 진주성 싸움에서 호남의병부대가 사용했던 부대기(部隊旗)에는 송골매 ‘골(鶻)’ 자(字)가 그려져 있었다. 바로 골입아군(鶻入鴉群; 용맹한 의병을 상징하는 송골매가 왜군을 상징하는 까마귀 무리들을 흩어버린다는 뜻)이라는 사자성어에 나온 글귀다. 당시 의병들의 비장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장수가 있었으니 능주 삼충각에서 추념하고 있는 조현 장군이다.
조현 장군 역시 임진왜란(1592년) 발발 37년 전인 1555년 을묘왜변 때 왜구와 싸운 장수이다. 삼충각에 모셔져 있는 분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지역민들에게 전해졌기에 능주 사람들은 강 이름 마저도 ‘충신강’이라 부른다.
이 삼충각 뒤로 철길이 나 있는데 일제가 건설한 철도이다. 바로 삼충각이 위치에 있는 산 허리를 잘라 철길을 놓아 버렸다. 지금도 이 철도를 이용해 광주에서 여수로 오가는 경전선 열차가 지난다. 일제는 삼충각의 의미를 애써 퇴색시키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그동안 능주는 역사적ㆍ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일제의 농간에 의해 망각되고 폄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서 호남정신의 원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남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남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렇다.
얼마 전에 필자가 “화순 능주를 역사ㆍ문화ㆍ교육 르네상스 고을로 창조하자”고 했던 것도 바로 호남 정신의 중심이 능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아직까지 능주 선비문화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것은 그동안 가슴 앓이하며 능주를 애타게 지켜오신 분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잠자고 있는 능주 선비문화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단합된 힘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호남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호남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에 호남정신의 중심인 능주 선비문화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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