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36) - 삼장사(三壯士)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36) - 삼장사(三壯士)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8.1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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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음이여! 삼장사 넋도 결코 죽지 않았소 : 三壯士 / 학봉 김성일

삼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가리킨다. 의병장하면 큰 벼슬이나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쉬우나 시골의 한 촌로나 의리 있는 마을이장이나 힘이 있는 장사였을 뿐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수당이나 급료가 있었던 것도 아니요, 국가나 공공단체에서 인정하는 사람도 아니다. 스스로 병사들을 모집하여 나가 싸웠던 사람이다. 진주 남강 촉석루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들, 한잔 술에 웃음을 지으면서 강물을 가리켜 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三壯士(삼장사) / 학봉 김성일

진주 남강 촉석루에 임진왜란 의병장님

한잔 술에 웃음 지며 강물을 가리킨데

긴 물은 도도히 흐르니 장사의 넋 죽지 않고.

矗石樓中三壯士 一杯笑指長江水

촉석루중삼장사 일배소지장강수

長江萬古流滔滔 波不渴兮魂不死

장강만고유도도 파불갈혜혼불사

마르지 않음이여! 삼장사들의 넋도 결코 죽지 않았소(三壯士)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진주 남강 촉석루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님들 / 한잔 술에 웃음을 지으며 강물을 가리켜 보네 // 강물은 영겁토록 도도하게 흘러가고 / 마르지 않음이여! 삼장사들의 넋도 결코 죽지 않았소]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삼장사를 생각하며]로 번역된다. 삼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학봉집에는 삼장사가 김성일, 조종도, 곽재우로 되어 있으나 1726년에 간행한 학봉 연보에는 곽재우郭再祐가 이로李魯로 바뀌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 두 집 후손 간에 다툼이 생겼고, 1822년에 곽·이 두 집 후손 간에 소송이 일어났다. 당시 경상 감사는 김상휴金相休였다고 전하는 문헌을 보아 전모를 보인다. 시인은 임진왜란 때 분연히 나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웠던 장사 세분을 떠올리며 시상을 일으켰다. 진주 남강 촉석루에 임진왜란 의병장님, 한잔 술에 웃음 지며 강물을 가리킨다고 했다. 특히 진주 남강의 저항 정신에 입각한 싸움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저항의 싸움이었다. 승리라기보다는 많은 의병장이나 이름 없는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씻을 수 없는 우리 역사의 현실이다. 화자는 이제 그 분들의 영령을 그대로 묻어 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오래도록 기리고 싶었을런지 모른다. 그래서 강물은 영겁을 도도히 흘러가고 있으니, 영원히 마르지 않음이여! 장사들 넋도 죽지 않았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임진왜란 의병장님 한잔 술에 강물보네, 강물 영겁 도도히 흘러 영원한 삼장사 넋이여!’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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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556년(명종11)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황은 김성일이 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마음을 세움이 정성스럽고 절실하다고 많은 칭찬을 하였다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황의 주리론을 계승하기도 했다.

【한자와 어구】

矗石樓中: 진주 촉석루에. 三壯士: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김천일, 황진, 최경회를 지칭함. 一杯: 한 잔 술. 笑: 웃다. 指: 가르키다. 長江水: 긴 강물. // 長江: 긴 강물. 萬古: 만고에. 流滔滔: 도도하게 흐르다. 波不渴兮: 파도가 마르지 않음이여! 魂不死: 넋이 오래도록 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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