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36) - 고종과 민왕후의 흥청망청
조선, 부패로 망하다 (36) - 고종과 민왕후의 흥청망청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7.26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73년 11월, 10년간의 대원군 섭정이 끝나고 고종이 친정하자마자 고종과 민왕후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원자(나중에 순종)가 1874년 2월에 탄생하면서 궁중에서는 복을 비는 제사를 많이 벌였는데, 팔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지냈다. 임금도 마음대로 잔치를 베풀었으며, 하사한 상도 헤아릴 수 없었다. 하루에 천금씩 썼으니 내수사의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호조나 선혜청에서 공금을 빌려 썼는데, 재정을 맡은 신하 가운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따지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하여 대원군이 십 년간 모은 것을 일 년도 안 되어 모두 탕진했다. 이때부터 벼슬을 팔고 과거(科擧)를 파는 나쁜 정치가 잇달아 생겨났다.” (황현 지음·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서해문집, 2006, p 50, 54)

원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시름시름 앓았다. 민왕후는 원자의 무병장수를 위해 무당을 불러 궁중에서 굿을 하고 전국 명산대천과 유명한 절에 기도처를 만들었다. 심지어 금강산 1만2천 봉의 봉우리마다 쌀 한 섬과 베 1필, 돈 100냥씩을 시주하였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1874년 11월에 민승호가 의문의 폭발물 사고로 사망하자 민규호(1836∽1878)가 민씨 척족의 실세가 되었다.

1875년 8월에 이조판서에 임명된 민규호는 고종에게 ‘벼슬 시킬 사람을 붉은 종이에 써서 이조에 내려주면 추천자 명단에 올리겠다.’고 은밀히 아뢰었다. 고종은 이 방법이 마음에 들어 민왕후와 의논해 벼슬 시킬 사람을 서하(書下)했다. 이는 조선왕조가 실시해 온 의망(擬望 : 이조가 3명의 후보를 올리면 임금이 낙점) 제도를 무너뜨린 낙하산 인사였다.

아울러 민왕후는 1875년경부터 지방 수령 자리를 돈 받고 팔았다.

“중전은 공을 들이고 비는 일에 절제가 없고 물품의 하사도 적지 않아 돈이 한량없이 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령 자리를 팔기로 마음먹고 민규호에게 전국의 수령 자리의 값을 매겨 올리도록 하였다. 민규호는 지방 수령의 관직은 팔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응모자가 없도록 하려고 1만 냥짜리 자리를 2만 냥으로 올려서 중전에게 아뢰었다. 하지만 이 가격에도 수령을 하려는 지원자가 엄청 많았다. 그리하여 부임하는 수령들은 가렴주구를 일삼아 백성들이 더욱 곤궁해졌다. 그때야 민규호는 후회했다.” (황현 지음·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상), 2005, p 96 )

한편 고종 부부는 유흥을 즐겨 매일 밤 연회를 열고 질탕하게 놀았다. 광대, 무당과 악공들이 어울려 노래하고 연주하면 손뼉을 치고 좋아하며 접부채와 세모시·인삼 등 진귀한 물건들을 비 오듯 던져주었다. 밤새 계속된 연회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때야 잠자리에 들어 한낮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민왕후의 사치가 기록되어 있다.

“서북지방에서 나는 돈피(㹠皮)는 털이 좋고 진귀하여 비단보다 열 배나 비쌌다. 중전은 모전(毛廛 모피 가게)에 명하여 돈피 모장(毛帳) 열 벌을 급히 들이라고 명했다. 모전에서 만들어 올리자 중전이 휘장을 펼치도록 하고 구경하는 즈음에 촛불 심지가 떨어져서 순식간에 타버렸다.”

민왕후는 씀씀이도 컸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조카 민영익을 살려준 미국 의사 알렌에게 10만 냥(환산 50억 원)을 주었다. 자신의 시의(侍醫 궁중 의사)였던 언더우드 부인이 1889년 3월에 결혼할 때는 축의금으로 현금 100만 냥 (환산 500억 원)을 보냈다.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역사저널 그날 8 - 순조에서 순종까지, p 95-98)

심지어 관리들은 참봉·감역 등 초임(종9품) 벼슬도 팔았다. 충청도의 늙은 과부가 데리고 사는 ‘복구(福狗)’라는 개에게 감역(監役 종9품, 건축 토목공사 감독) 벼슬을 파는 해프닝도 생겼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민씨들이 정권을 잡자 백성들이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해 자주 탄식하며 도리어 대원군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적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