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수도권?” 반발 속 ‘이건희 기증관’ 송현 or 용산 압축
“또 수도권?” 반발 속 ‘이건희 기증관’ 송현 or 용산 압축
  • 최용선 시민기자
  • 승인 2021.07.08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점 찍었던 송현동 부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의 문체부 부지
대구ㆍ부산 등 “국가 균형발전 역행” 반발

정부가 가칭 ‘이건희 기증관'(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후보지를 서울 송현동과 용산으로 압축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미술관 부지로 매입했던 서울 송현동 부지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미술관 부지로 매입했던 서울 송현동 부지

각 지방자치단체의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서울'로 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이고, 또 그 중 용산과 송현동일까. 궁금하다.
우선 박물관·미술관의 실질적 역할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 30여 곳에 이르는 지자체에서는 각 지역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과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지방 유치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박물관·미술관은 막대한 금액을 들여 건물을 짓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증품의 통합적 관리·조사·연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을 위한 기본원칙 및 활용 기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을 위한 기본원칙 및 활용 기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그 이유로 문체부는 브리핑에서 "유화부터 불상, 도자기까지 다양한 미술품을 보존ㆍ관리ㆍ전시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이 필요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연구와 관리에 있기 때문에 서울로 정했다"고 말했다.

또 용산과 송현동은 다른 문화 인프라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송현동 부지 인근에는 경복궁과 인사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서울공예박물관과창덕궁·덕수궁·남대문까지 문화 '고리'가 이어진다는 강점으로 꼽았다.

특히 송현동은 고 이건희 회장과의 인연이 있는 곳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초 이건희 회장이 1997년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염두에 두고 매입했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설계까지 맡겼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치고 2008년 대한항공으로 소유권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한항공은 최고급 호텔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인허가를 놓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와 갈등을 빚어왔으며, 현재는 서울시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의 문체부 부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의 문체부 부지

이에 못지않게 용산도 큰 잇점으로 꼽고 있다.
현재 후보지에 오른 곳은 용산가족공원 내 문체부 소유 부지(용산동6가 168-6)다.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이다. 국립한글박물관과도 가깝다.
'이건희 콜렉션'의 또 다른 본산이라고 할 만한 삼성미술관 리움 외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용산역사박물관(2022년 개관) 등 20여 개 박물관·미술관도 모여 있다. 용산공원 조성 예정지와는 무관한 별도의 부지다.
그래서 문체부는 용산 부지는 정부 땅이어서 별도의 부지 매입비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희 기증관'처럼, 한 개인의 기증을 계기로 중앙정부가 나서 별도의 시설을 만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한데 아우르는 국가 문화시설이 생기는 것도 초유의 일이다.
문체부는 “하나로 통합한 뮤지엄이 기증자의 정신과 철학을 알리는 데 적합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고미술품부터 현대미술품을 모두 한곳에 모으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닌 '만물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도 그만큼 거셌다.

특히 이건희 기증관 서울 확정에 “또 수도권?”이냐며 대구·부산 등 비수도권 지자체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 균형발전 역행”이며 “지역의 문화 향유 기회를 짓밟은 폭거”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영남권 지자체들은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설 장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비수도권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려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 큰 유감을 표시했다.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번 결정은 일방적인 밀실 행정과 지방과의 소통 부재를 드러낸 문제이자, 현 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인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유치를 신청했던 다른 자치단체들과 연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의 부당한 입지선정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한편 문체부는 향후 최종 부지 선정을 거쳐 2027~2028년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오는 21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각각 ‘국가 기증 이건희 기증품 특별 공개전’을 동시 개막한데 이어 내년 4월 1주년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연 3회 이상 지역별 대표 박물관ㆍ미술관 순회 전시를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문제부의 이번 결정은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당연직 위원 4명과 전문가들로 구성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가 10차례 논의를 거친 끝에 나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