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기
매일 걷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1.07.0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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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운동량이 부족해지고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다. 더구나 혼자 지내다시피 하므로 누가 책하는 사람도 없어 생활의 규율이나 질서가 흐트러진다. 안되겠다 싶어서 6월 초부터 매일 산책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집 안에서의 그 짧은 거리가 문제이지 일단 밖에 발을 내딛고 나면 먼 길도 마다않고 걸어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개울 물소리는 공으로 들으랴오’ 하는 듯한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개울 바닥에는 황새가 껑중한 다리를 하고 물밑을 들여다보고 있다.

개울 옆으로 난 하천공원 비슷하게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푸른 풀냄새가 진동한다. 여름의 향기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개울둑으로 올라가는데 그 길을 따라 한정없이 가다보면 시골의 정취가 물씬 나는 마을이 나타난다. 고가도로 밑을 걸어 더 가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산야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쯤 되면 걷기 운동이라 해야 할지, 걷기 구경이라고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고 성취감 있는 시간이라면 단연코 걷는 시간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저녁 잠자리에서 하루 일을 돌아보면 걸었던 것 말고는 더 좋은 일을 한 것이 없다. 어떤 때는 한 시간 반이나 걸을 때도 있다. 날씨가 덥지 않다면 지쳐 쓰려질 정도로 종일 걷고 싶기도 하다.

기운이 다 빠져서 땅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대지가 나를 품고 있는, 엎드려 흙냄새를 맡는 그런 장면 말이다.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행위이다. 대지에 받을 딛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대지로부터 온몸에 전해오는 생명감이 솟아난다. 생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두드러진 신체 부위는 두 발이다. 인간 키의 반 이상을 두 다리가 차지한다. 직립보행을 하라고 만들어져 있는 신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한 걷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성서는 수십 년간이나 앉은뱅이로 지냈던 불구 남자가 예수의 보살핌으로 나았다고 기록한다. 그때 예수가 병든 자에게 하는 말이 ‘일어나 걸어가라’였다.

살아 있는 한 걷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물론 여기서 장애를 입은 경우는 예외로 두고 하는 말이다. 걸을 때 인간은 두 발로 대지와 교감을 나눈다. 걷는 것은 여기서 저기로 나를 옮기는 일이다.

나는 매순간 발을 내디뎌 걷는 새로운 자리에 가 있다. 매 걸음을 뗄 때마다 새로운 곳에 나는 도착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리는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고막원다리라는 이름처럼 다리 이름에 인간의 다리를 붙인 것은 다리의 의미를 즉물적으로 나타낸다.

다리를 가지고 다리를 건넌다. 간단치 않은 뜻이 숨어 있다. 그러니 다리는 잘 보존해야 한다. 이제사 깨닫는 바이지만 다리는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이다. 그동안 나는 다리를 너무 함부로 대해 왔다. 아주 잘못된 버릇이다.

어릴 적엔 삶에는 대단한 무엇이 있는 줄로 알았다. 살아보니 아니다. 그저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는 것 말고 더한 것이 없다. 그냥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것, 두 발바닥에 닿는 대지의 힘을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이다.

옛 사람은 건강한 사람을 ‘건각’(健脚)이라 했다. 건강한 다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다. 옛날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는데 기억컨대 잃어버린 한쪽 다리를 6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어 기계 다리를 붙였던가 했다. 그리하여 그 다리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 걸 보고 우스갯말로 친구들에게 내 두 다리는 1200만 달러야, 하고 말하곤 했다. 그때 그 돈은 어마무시한 돈이었다. 다리는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가슴에 마음이 있다면 다리에 전 인생이 달려 있다.

전에 성당 신부가 ‘사람은 발바닥을 보이면 죽은 것이고, 발등을 보이면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드러누워 발바닥을 보이는 자세는 사람이 죽어 침상에 누워 있는 자세라는 것이다. 그러니 발등을 보이고 걸으라는 것.

극단적으로 말하면 걸을 때 나는 살아 있다. 생의 기쁨이 걷기에서 나온다. 내일 아침은 두 시간 정도로 늘려 걸어보아야겠다. 그러나 다리를 혹사하는 것은 다리에 무척 미안한 일이다. 내 다리라고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 다리다. 다리야, 오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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