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4) - 증모녀(贈某女)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4) - 증모녀(贈某女)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5.17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 자랑하니[1] : 贈某女 / 기은 박문수

남녀관계는 오묘한 끌림이 있는 지도 모른다. 요즈음 성추행이나 성희롱이란 말이 유행처럼 입언저리에 오르내리지만, 과거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아니 남자의 야성野性은 아리따운 여인을 보면 가만 두지 못한 오묘한 발동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지식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억제하는 것이 지성인임을 알게 한다. 나그네 잠자리 쓸쓸해 꿈이 좋지 못한데, 붉은 복사꽃 흰 오얏 꽃 봄 한 철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某女(증모녀)[1] / 기은 박문수

잠자리가 쓸쓸한데 꿈자리도 좋지 못해

하늘에는 차가운 달 우리 이웃 비추는데

푸른 대 절개 자랑하나 봄꽃들이 한창이네.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부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 자랑하니(贈某女)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인 암행어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나그네 잠자리 쓸쓸해 꿈이 좋지 못한데 / 하늘에선 차가운 달 이웃을 비추네 // 푸른 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 자랑하지만 / 붉은 복사꽃 흰 오얏 꽃 봄 한 철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어느 여인에게 주다(1)]로 번역된다. 암행어사도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비유법은 은근한 은유법과 노골적인 직유법이 있다. 은유는 은근한 맛이 있지만, 직유는 [~처럼]이나 [~같이]도 없이 단도직입적인 직설적 표현으로 감정이입이 서슴거리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첫소절인 수련과 둘째 소절인 함련에서 은근한 은유법을 쓰고 있어 작품의 질을 격상시켜 놓았다. 나그네 잠자리 쓸쓸해 꿈이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 나그네의 잠자리를 이웃에 비춘다고 했다. 완만한 상승곡선을 이루는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다시 이어진 함련에서 여자의 절개를 대쪽으로, 복사꽃 오얏꽃 피는 시기의 한 철이라는 은근성을 내포해 냈다. 푸른 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 자랑하지만,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 봄 한 철이라는 사상을 매만지고 있다. 후구는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혔고 /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 사람의 본성이 본래 무정치 않은 것이니 /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라는 직설적 표현기교를 쓰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잠자리 좋지 못한데 차가운 달 이웃하네, 푸른 솔은 절개 자랑 홍도백리 겨울 한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종사관으로 출전, 전공을 세워 경상도관찰사에 발탁되었다.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영성군에 봉해졌다. 같은 해 도당록에 들었고, 1730년 호서어사로 기민구제에 힘썼으며 암행어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客枕: 나그네 잠자리. 條蕭: 쓸쓸하다. 夢不仁: 꿈자리가 좋지 않다. 滿天: 하늘에 가득차다. 霜月: 차가운 달. 照吾隣: 우리 이웃을 비치다. // 綠竹: 푸른 대. 靑松: 푸른 솔. 千古節: 천고의 절개. 오랜 세월의 절개. 紅桃: 붉은 봉숭아. 白李: 흰 오얏. 片: 편편히. 時春: 봄의 한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