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 뒤로 하고 '극장'으로 회귀
'상업성' 뒤로 하고 '극장'으로 회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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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본으로 70여년 역사 이어온 광주극장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지난 10일과 14일 월드컵 한국 경기가 있던 날, 광주극장 안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두들 빨간 티를 입고 하나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상업성에 밀려나 썰렁하기만 하던 광주극장이 이날만큼은 대형스크린으로 축구도 보고 영화도 보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월드컵 열기가 고조됨에 따라 광주 곳곳에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사람들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광주극장의 이런 모습은 그리 크게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더욱 의미있는 것은 광주극장의 또 다른 고민이 담겨있다. 한번 패했다가 힘을 쌓아 다시 회복한다는 '권토중래(捲土重來)'. 최근 광주극장의 모습이 그러하다. 무대와 객석을 갖추고 창극부터 판소리, 연극·음악 등 70여년동안 광주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켰던 이곳은 세월이 변하면서 영화상영이 주를 이뤘으나 다시 예전의 '극장'모습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한때 광주를 대표하던 극장들은 하나 둘 속속 등장하고 있는 첨단 설비를 갖춘 복합상영관의 태풍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극장과 함께 반세기 동안 광주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채워줬던 광주 태평극장과 현대극장도 지난 4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결국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극장은 바로 문을 닫아야 하는 절명의 위기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와 가히 소리없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처럼 극장업계에 냉정한 자본의 논리가 현실화되면서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광주극장도 예외일 순 없었다. 다른 극장들이 그러하듯 '살아남기' 전략을 구사해야만 했다.

이에 광주극장은 문을 닫거나 무등극장이나 제일극장처럼 복합관으로의 재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70여년의 전통을 저버릴 수 없어 옛모습으로 회귀를 결심한 것.

시사회, 음악공연 등 문화예술장으로 자리매김 할 것
극장에 얽힌 추억과 역사 담긴 자료 찾는 중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광주극장은 응원단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김태성 기자

광주극장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지난 1933년 광주지역에 최초로 극장이란 간판을 내걸었으며, 일제치하에서 일본 자본이 아닌 민족자본으로 그 가치를 높였다. 무엇보다 수없이 변하는 광주의 지형도 가운데서도 한 자리를 지키며 광주의 맥을 이어온 곳이기도 하다.

범대순 시인은 이곳에 특별한 추억이 있단다. 그가 중학생이었을 적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현인과 라이벌인 남인수의 '신라의 달밤' 공연을 공짜로 구경한 것. 이후 범씨는 힘들 때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삼을 정도로 현인에게 푹 빠지게 됐단다.

광주극장에 이런 감동과 추억을 갖고 있는 것은 단지 범씨 뿐만은 아닐 게다. 학생의 신분 때문에 몰래 담넘어 들어가 영화 보던 짜릿함,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 손꼽힐 당시 애인 손 꼭 붙잡고 영화보던 그 떨림, 그리고 넓은 무대에서 펼쳐진 다양한 극은 광주시민을 웃고 울게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광주의 감수성이 살아 숨쉬던 곳이었다.

이에 광주극장은 옛날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상업적인 의미를 떠나 광주극장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는 광주극장 관계자는 영화상영관에서 극장으로 되돌아갈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락 콘서트, 시사회, 영화관련 소품전 등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것이 광주극장 측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에 밀려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잡기 위해 극장 관계자들은 백방팔방으로 뛰며 극장에 얽힌 추억, 자료 등을 모으고 있다. "옛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광주극장 본연의 몫을 다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세기 한국 영화사와 더불어 광주 문화와 동고동락했던 광주극장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숨쉬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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