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만에 오월 막내로 환생한 ‘故 전재수 열사’
41년 만에 오월 막내로 환생한 ‘故 전재수 열사’
  • 최용선 시민기자
  • 승인 2021.05.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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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12살 나이로 산화한 뒤 영정 사진 바꾼 묘비
모교 광주 효덕초 학생들이 쓴 손편지 유족에 전달
​​​​​​​학교, 5·18 정신계승 행사…엽서·추모리본 달기·글 남기기

“잘못없는 12살 아이를 희생시킨 군인이 너무 밉네요”
오월 그날, 당시 12살 먹은 세상 물정 모르던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전재수 군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국립5·18민주묘지 2-22번 전재수군의 묘비 앞에 41년만에 빛을 보게된 영정 사진 

올해가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이니까 살아있었다면 53세가 된다.
고(故) 전재수 군은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하고 5·18묘역에 묻힌 4살배기 행방불명자를 제외하곤 현재로선 5월의 막내다.

전재수 군이 산화한 날은 1980년 5월 24일 오후 광주 남구 효덕동의 집 근처에서다. 친구들과 놀다 계엄군을 발견한 뒤 달아나다가 벗겨진 고무신을 다시 주워들다 안타깝게도 M16총탄 6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계엄군이 효덕동으로 들어와 총격을 가하게 된 것은 자신들끼리 오인사격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이를 시민군에게 보복하려 했다는 점에서다.

마치 현재 미얀마 군부가 저항하는 시민군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듯이 말이다. 당시 광주 시가지 상황은 시시각각 전 세계로 전파되는 미얀마 군부의 만행과 다를 바 없어 어찌 보면 당시 광주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5·18 당시 12살의 나이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져 518묘역에 안장된 고 전재수군
묘비가 무궁화꽃 대신 영정 사진으로 41년만에 바뀌었다

전 군의 죽음으로 유족들도 비탄에 빠져들었고. 그 가운데서도 미완의 아픔을 오롯이, 여지껏 간직하며 가슴아파했던 이가 전 군의 4살 아래 여동생 영애씨(49) 였다.

영애씨의 아픈 기억은 오빠가 산화한 그날, 자신에게 물총을 쏘는 오빠를 향해 화를 내자 오빠는 친구들과 놀러 밖으로 나갔다가 참변을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서 였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총소리에 놀라 이불을 둘러쓰고 벌벌 떨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오빠가 죽었다는 소리에 그만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한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1984년 아들 곁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2000년에, 누나도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전 군 유족은 형 재룡씨와 영애씨 뿐이다.

이들 두 자매가 특히 안타까워했던 것은 전 군이 41년 동안 '얼굴없는 희생자'로 남았다는 점이다. 전군의 살아생전 사진 한 장을 찾지 못해서 였다.
그래서 전재수군의 망월 묘역에는 영정 대신 무궁화꽃이 그동안 대신했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며칠 남기지 않은 어린이날인 5일 전재수군은 비로소 41년 만에 얼굴을 되찾았다. 미완의 518에 대한 햇빛을 보게 됐다.
이들 남매가 5·18 이후 41년만인 지난 1월에 20년 전 작고한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전군의 사진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에 유족들은 어린이날을 맞아 전군의 사진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4개월을 기다린 끝에 의미있는 행사를 열었다.

국립5·18민주묘지 2-22번 전재수군의 묘에서 전재수군 사진 묘비 제막식과 추모제였다.
이날 행사를 축복하기라도 하듯 전날 내린 비가 새벽에 멈춰서인지 하늘은 한없이 파랗고 드높았다.

효덕초 학생이 선배인 故 전재수 선배을 추모하며 쓴 편지글

특히 전재수 군의 모교인 효덕초등학교 후배들이 지난해 전군을 추모하며 쓴 편지글이 전해지면서 추모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전재수 선배님! 총 맞고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요.”
효덕초 학생들은 지난 2016년부터 41년 전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전재수 선배에게 매년 편지를 쓰며 기억을 소환하고 추모해왔다. 학생들의 편지는 학교 내 추모관에 차곡차곡 쌓였고 전달되지 못한 편지만 수백 통에 이른다.

유족들은 어린 후배들의 편지들을 5일 열린 묘비제막식 날 전달 받았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천진난만하게 쓴 손 편지를 읽으며 또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편지 곳곳에는 전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학교에서 선배님 이름과 이야기가 많이 기억되고 있어요. 선배님 얘기를 듣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선배님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희생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잘못없는 12살 아이를 희생시킨 군인이 너무 밉네요”라고 담겨 있었다.

아울러 학생 들은 전 군 뿐만 아니라 1980년 당시 광주의 모든 분들에게 “가족을 잃고 희생당하셨지만 봉사하고 헌혈, 치료까지 하시는 분들을 보고 감탄하고 행복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에는 밝혀지지 않은 미완으로 끝난 5월의 진실에 대한 다짐과 당부도 포함돼 있었다.
“누가 그러한 명령을 내렸고 희생된 사람들이 묻힌 곳이 어디 있는지, 아직까지 5·18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전두환씨는 아직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라고 편지에 담았다.

효덕초교 학생들은 전군과 오월 그날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과 전재수 선배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잊지 않겠다”고 썼다. 이와 함께 광주에서 농사를 짓는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씨도 추모배지를 제작해 유족에게 전달하면서 행사 의미를 더했다.

한편, 효덕초는 1989년에 전군에게 명예졸업장 수여했다.
이후 매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및 전재수 학생을 기억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특히 올핸 5·18민주화 정신 계승 행사로 전 군을 비롯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편지·엽서, 추모리본달기, 기념 글 남기기 등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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