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 남기고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
800만원 남기고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
  • 시민의소리
  • 승인 2021.04.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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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조화도 없는 빈소
‘혜화동 할아버지'가 작은 별빛 되어 떠나다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인 정진석(90) 추기경이 27일 선종(善終)했다.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교황 즉위 미사가 끝난 직후 정진석(왼쪽) 추기경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만남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교황 즉위 미사가 끝난 직후 정진석(왼쪽) 추기경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만남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1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이후 병세가 악화돼 이날 10시 15분 선종했다고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밝혔다. 2006년 추기경 서임 당시 정 추기경은 ‘작은 별빛'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거대했던 ‘조용한 추기경'이었다.

선종 다음날 2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브리핑을 통해 정진석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정 추기경은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면서도 본인의 뜻에 따라 시술하지 않았다.
한번은 의식불명 상태가 나흘 정도 이어진 상황 속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난 정 추기경은 입원실에 들어오는 간호사를 향해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신학교 입학 이후 평생을 4시반 기상, 밤 10시 취침의 원칙을 시계 바늘처럼 지키며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정 추기경이다.
정 추기경은 평소 “흔히 행복이란 소유 혹은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자기 것을 버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기 것을 버리는 것’ 중 특히 시간을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그런 정 추기경이였기에 자신에게 남긴 통장 잔액은 약 800만원이라고 한다. 2월말 위독한 상황을 겪으면서 정 추기경은 통장을 소진시켰다.
평소 신문을 열심히 읽으며 기부할 곳을 찾던 그는 서울대교구가 노숙인 등을 위해 개설한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과 음성꽃동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아동신앙교육 등 5곳을 지정해 기부해줄 것을 당부했다.
본인은 장례비용도 스스로 부담하고자 했으나 ‘모든 사제가 선종하면 장례는 교구가 부담한다’는 원칙에 따라 거절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통장 잔액이 남은 것은 그로부터 2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서울대교구에서 은퇴 추기경에게 지급하는 금액과 6·25 참전 용사로서 보훈처로부터 받는 금액 두 달치가 모였기 때문이다.

정 추기경의 유해는 27일 밤 서울 명동대성당으로 옮겨져 유리관에 안치됐다. 30일까지 오전 7시~오후 10시 방역지침에 따른 거리두기를 유지한 상태로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기로 했다.
서울대교구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인사의 조화(弔花)를 사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오전부터 조문객들의 줄이 이어지고 있지만 명동대성당 주변은 엄숙하면서 조용한 분위기였다.

한편 서울 출신인 정 추기경은 서울대 화공과에 입학한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면서 사제의 길로 방향을 바꿨다. 1961년 사제품을 받았고 로마 유학을 거쳐 1970년 만 39세 때 청주교구장에 임명됐다.
청주교구장 시절엔 음성 꽃동네 설립을 적극 후원하며 한국형 사회복지의 한 모델을 만들었다.
1998년 김수환 추기경 후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고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생명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2005년 ‘생명의신비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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