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18) - 전 · 현직 대신, 한 밤중에 고종을 면담하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18) - 전 · 현직 대신, 한 밤중에 고종을 면담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3.22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73년 11월 4일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홍순목, 좌의정 강로, 우의정 한계원이 연명으로 차자(箚子)를 올렸다.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안내판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안내판

"신들이 최익현의 상소문을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흉악하여 저도 모르게 뼈가 시리고 간담이 떨렸습니다. 찬배(竄配 유배)하라는 처분은 매우 엄정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죄를 가리기에는 부족합니다. (중략) 최익현은 고금에 없는 죄를 저질렀으니 빨리 의금부에서 나국(拿鞫)하여 진상을 밝혀내게 하고 전형(典刑)을 시행하소서."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최익현의 상소문 중에 핍박하는 말이 많이 있어서 귀양을 보내라는 처분을 내렸는데, 노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이와같이 말해서야 되겠는가? 경들은 이해하라."

조금 있다가 홍문관에서 연명 차자(聯名箚子)를 올렸다.

"최익현에 대하여 속히 의금부에서 국청(鞫廳)을 설치하여 진상을 밝혀내게 하고 전형(典刑)을 시행하소서."

고종이 비답하기를, "최익현의 상소문 중에 핍박하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미 찬배(竄配)시켰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 떠들어대는가?“

(고종실록 1873년 11월 4일 6번째 기사)

고종의 답변은 약간 신경질적이다.

이어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도 연명으로 "최익현에 대하여 속히 의금부에서 국청(鞫廳)을 설치하여 진상을 밝혀내게 하고 전형(典刑)을 시행하소서."라고 청했다.

고종은 "홍문관에 내린 비답에서 이미 다 이야기하였다."고 비답했다.

(고종실록 1873년 11월 4일 7번째 기사)

1873-1876년 주요사건 안내판
1873-1876년 주요사건 안내판

이날 깊은 밤에 고종은 시임 대신(時任大臣 현역대신)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전임대신)을 접견하였다. 대신들이 접견을 청하였기 때문이다.

고종 :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깊은 밤에 청대를 하는가?"

영돈녕부사 홍순목 : "신들이 최익현의 상소와 관련하여 연명(聯名)으로 차자(箚子)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해 마음이 답답하여 편히 있을 수가 없어서 밤을 무릅쓰고 접견을 요청하였습니다."

좌의정 강로 : "이것은 심상하게 보면 안 될 상소입니다. 만동묘(萬東廟)를 철폐한 것은 자전(慈殿 대왕대비 조대비)의 분부를 받든 것이라는 비지(批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감히 의리와 윤리가 파괴되었다.〔彝倫斁喪〕’라는 네 글자의 말을 써서 방자하게 상소를 올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래 부분의 문구에 대해 ‘핍박하는 말이 있다.’는 성교(聖敎)가 있었으니, 전하께서도 이미 그 단안에 대해서 환히 알고 계십니다. 잠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보다 더 급한 일이겠습니까?"

우의정 한계원 : "오늘 신들은 차자를 올렸고, ‘최익현의 상소문 중에 핍박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는 비답이 있었습니다. 그가 임금께 올리는 글에서 핍박하는 문자를 썼으니 이것이 어찌 난신적자(亂臣賊子)의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그가 저지른 죄를 환히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잠시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까?"

고종 : "이처럼 시급해서 밤을 무릅쓰고 청대하는가? 그런데 상소문에 대한 비답은 어제 내렸는데 오늘에 와서야 차자를 올리니 어찌 이리도 더딘가?"

홍순목 : "신들은 그 상소문을 미처 보지 못하였는데 아주 패악스런 몇 구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상의해서 차자를 쓰고 나니 이미 삼경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올리게 된 것입니다."

고종: "그 상소문에서 어느 어느 구절이 패악한가?"

홍순목 : "전하가 그 상소문을 읽어보고 핍박하는 말이 있다고 하교하셨으니 상세하게 잘 알고 계실 텐데 어찌 신들이 어느 구절이라고 조목조목 아뢸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종 : "어느 단락 어느 구절이 흉측한가?“

좌의정 강로 : "전하께서 이미 핍박하는 말이 있다고 하교하셨으니 어느 구절이 핍박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환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찌 신들의 말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종 : "대왕대비가 대의(大義)를 수행하여 만동묘를 이미 철폐하였으나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림(士林)들이 있는 듯하다고 말하였다."

홍순목 : "전번 대간의 상소문에 대하여 자전의 하교가 있었다고 비답하였는데 그가 어떻게 감히 ‘의리와 윤리가 파괴되었다.’고 함부로 쓸 수 있단 말입니까?"

강로 : "만일 ‘사림들이 억울하게 여기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무슨 탈이 된다고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이렇게 흉측한 말을 한단 말입니까?"

한계원 : "만일 아뢸 일이 있어서 해당 문제를 놓고 논한다면 무엇이 불가하기에 감히 흉측한 말을 여러 문장에 쓴단 말입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