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15) - 장령 홍시형, 최익현을 옹호하는 상소를 올리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15) - 장령 홍시형, 최익현을 옹호하는 상소를 올리다.
  •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3.02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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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10월 29일에 사헌부 장령(掌令) 홍시형이 최익현을 지지하는 상소를 올렸다. 동부승지 최익현이 상소를 올려 조정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지 4일 후 였다.

운현궁 노안당
운현궁 노안당

“최익현의 상소를 읽어 보니 과연 정직하여 봉황이 아침 햇살을 받아 우는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상소는 “오늘날의 급선무는 《춘추(春秋)》를 밝히고, 명분을 바로잡으며, 거두어들이는 일을 금지하고, 호전(胡錢)의 사용을 폐지하고, 재이(災異)을 경계하고, 상벌을 신중히 하며, 차함(借銜)을 막는 것 등 일곱 가지입니다.”라고 아뢴다.

“첫째, 춘추의 의리를 밝혀 사당(만동묘)과 서원을 복구하소서.

둘째, 호포가 나오면서 등급이 문란해져 벼슬아치나, 선비, 하인들이 똑같이 취급되고 상하의 구별이 없어졌으니 한탄스러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디 호포를 혁파하여 명분을 바로잡으며 군액(軍額)을 바르게 하여 뜻하지 않는 사변에 대처하소서.”

호포제를 폐지하라니, 다시 양반의 특권을 인정하라니. 이는 대원군이 백성을 위해 만든 정책도 뒤집겠다는 기득권층의 반동이었다.

“셋째 원납전과 결렴(結斂)을 폐지하소서. 백성들의 고혈을 말리는 취렴(聚斂)을 금하고 재용(財用)을 절제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소서.

넷째 호전(胡錢 청나라 돈)의 폐해는 당백전(當百錢)보다 심합니다. 호전을 혁파하고 우리나라 돈을 씀으로써 물가를 고정시키고 인심을 진정시키소서.

다섯째, 전하께서는 조심스럽게 수양하고 반성함으로써 화를 전환시켜 복이 되도록 하소서.

여섯째, 상벌을 신중하소서.

일곱째 차함(借銜)을 막으소서. 모든 벼슬을 명예 벼슬로 차함(借銜)하는 것이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부디 차함을 막음으로써 공기(公器)를 중하게 하소서.”

노안당 안내판
노안당 안내판

차함은 실제로 근무하지 않고 이름만 가지고 있는 벼슬을 말한다. 그런 차함은 누구인가? 바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 이렇게 홍시형은 흥선대원군을 저격했다.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그대의 상소 내용은 구절마다 진달한 것이 착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매우 가상하다. 마음에 새겨두겠다. 그리고 그대는 바른말을 올리는 직책에 둘 만하니,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으로 제수한다.

장령으로 임명한 홍시형을 상소 하나로 홍문관 부수찬에 제수한 것이다. 마치 동부승지 최익현을 상소 하나로 호조 참판에 승진시키듯이.

고종의 비답은 이어진다.

“만동묘(萬東廟)에 대한 일은 이미 염교(廉敎)로 철폐한 것인데, 오늘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일의 체모가 달려 있으니,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다시는 이 문제를 가지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고종실록 1873년 10월 29일 2번째 기사)

한편 고종은 이날 최익현을 지지한 홍시형의 상소 내용이 옳다는 것을 밝혔다.

진강(進講)이 끝나자 하교하였다.

"방금 전에 홍시형이 상소를 올렸는데, 경은 보았는가?"

박규수가 아뢰었다.

"신은 조금 전에 승정원에서 대간의 상소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여러 승지들이 함께 읽어보았으나 성상께 올리는 일이 시급하여 그 대강만 보았을 뿐 미처 자세히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고종이 하교하였다.

"이 상소는 구구절절 충성심에서 나온 것으로 매우 가상하다."

다시 박규수가 아뢰었다.

"소원한 신하가 숨김없이 감히 바른 말을 올렸으니 실로 가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논의한 여러 조항에 대해서는 깊이 참작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규수는 홍시형의 상소에 신중하다. 좀 더 두고 보아야 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고종은 충성심 운운하면서 매우 가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친정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의 표현이었다.

이날 고종은 "장령 홍시형이 아뢴 조항 중 취렴(聚斂)을 금하는 일에 대한 것은 백성들을 걱정하는 마음이니, 고질적인 폐단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원납전과 결전(結錢)도 다 폐지하도록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에 알리라”고 전교하였다.

(고종실록 1873년 10월 29일 7번째 기사)

이제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흔적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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