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9) 차박정재의중운(次朴貞齋宜中韻)(1)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9) 차박정재의중운(次朴貞齋宜中韻)(1)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2.0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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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잊지 못할 순수한 그 마음만 있는데

서로가 잊지 못할 순수한 그 마음만 있는데(1) : 次朴貞齋宜中韻 / 야은 길재

부조현 고사는 다음과 같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조 태조가 개국(1932, 7)하자 고려의 유신 72인의 충신들이 개성 동남방의 부조현(不朝峴) 에서 조복을 벗어 걸어 놓고 헌 갓으로 바꿔 쓰고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으로 새 왕조인 조선을 섬기지 않고 들어갔다. 그들의 고려를 지키겠다는 절개를 곧게 지켰다.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 있나? 슬프구나 원통함이 이렇게 실처럼 이어졌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次朴貞齋宜中韻(차박정재의중운)(1) / 야은 길재

아침에 부조현에서 이별을 했는데

그대들은 지금에 어디로 가고 있나

슬프다 순수한 마음 원통함이 맺히네.

朝別不朝峴  諸君何所之

조별부조현  제군하소지

丹忱由耿耿  哀怨結絲絲

단침유경경  애원결사사

서로가 잊지 못할 순수한 그 마음만 있는데(次朴貞齋宜中韻1)로 제목을 붙인 율(律)의 전구인 오언 율시다. 작자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로 두문동 72현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아침에 부조현에서 이별했는데 /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 있나? // 서로가 잊지 못하는 순수한 그 마음만 있는데 / 슬프구나 원통함이 이렇게 실처럼 이어졌는데]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정재 박의중의 운에 차운하다(1)]로 번역된다. 시문에 나오는 박의중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우왕 때에 명나라와 교섭을 벌여 철령위를 철폐했으며 공양왕 때에 한양 천도를 반대하여 음양설의 허황함을 역설했다. [高麗史]를 편찬하였던 인물로 고려 삼은의 한 사람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역사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으로 시상의 간절함을 떠올리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두문동 72현을 부조현에서 이별했는데 그대들은 지금은 어디로 가 있는가를 묻고 있다. 고려 왕조의 깊은 뜻을 끝까지 지키자는 그 약속을 떠올렸을 것이다. 화자는 한 왕조가 역사 속으로 묻혀가고 한 왕조의 탄생의 비극적인 일들은 그렇게 피비린내를 몰고 왔다. 잊지 못하는 순수한 그 마음으로 슬프다 원통함이 엉킨 실처럼 이어졌다는 한 마디를 쏟아내고 있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상에서는 [밤의 어두움에 돌아가는 구름도 젖고 / 물시계 소리에 나그네 꿈도 더디네 // 충렬을 가진 선비를 논평 하지 말라 / 의리는 죽고 사는 일을 초월했네]라고 했다. 두문동 72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지는 후구에서 상술코자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두문동에서 이별했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잊지 못할 순수 마음 원통함만 엉키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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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이다. 다른 호는 금오산인(金烏山人)으로도 썼다.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아버지는 금주지사 길원진이며 어머니는 판도판서에 추증된 김희적의 딸이다. 1363년 도리사에서 처음 글을 배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高麗史]를 편찬도 했다.

【한자와 어구】

朝: 아침에. 別: 이별 하다. 작별. 不朝峴: 부조현. 강화 남문 밖 남쪽에 위치한 고개. 諸君: 그대들. 何: 어디. 所之: 가 있는 곳. [之]는 ‘가다’는 뜻으로 쓰임. // 丹忱: 참다운 마음. 由耿耿: 빛나고 빛나는 순수함으로 인해. 哀怨: 슬프고 원통함. 結: 단단히 맺혀 있다. 絲絲: 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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