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6) 모산(暮山)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6) 모산(暮山)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1.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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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산 그림을 그린 듯 나의 눈썹 쓸어놓고

아침 여명을 부여안고 찬란한 하루를 열다가 저녁이 되면 허전해진다. 해가 저물면 무언가 부여잡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허전하고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밤늦도록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도 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산은 걷기도 무서울 뿐만 아니라, 칠흑 같아서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은 담담하다고 했겠다. 소나무 끝에 달 돋으니 까마귀 떼 어지러운데, 옛 성의 가을 대나무 숲에는 찬바람이 불어온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暮山(모산) / 매월당 김시습

저문 산 그린 듯 눈썹을 쓸어 놓아

산기운 문지르니 담담하며 절묘하고

달 돋아 어지러운데 찬바람이 불어오네.

暮山如畫掃蛾眉   輕抹晴嵐淡亦奇

모산여화소아미   경말청람담역기

月上松梢鴉亂陣   故城秋籜有寒吹

월상송초아난진   고성추탁유한취

저문 산 그림을 그린 듯 나의 눈썹 쓸어놓고(暮山)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저문 산 그림을 그린 듯 나의 눈썹 쓸어놓고 / 맑은 산기운 살짝 문지르니 담담하기 절묘하네 // 소나무 끝에 달 돋으니 까마귀 떼 어지러운데 / 옛 성의 가을 대나무 숲엔 찬바람이 불어온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날이 저무는 산]로 번역된다. 일상의 하루는 아침의 희망 속에 시작했다가 날이 어두워지면서 밤의 휴식에 들어간다. 이 시간이 가장 담담하여 하루를 반성하면서 시상 주머니를 만지기에 적절했을 지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날 저문 하루, 어둠이 깔이면서 안식처를 찾아드는 동물적인 속성을 부여안고 매몰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조선 최고의 시성詩聖답게 비유법을 구사하는 시적인 주머니는 크고 완만해 보인다. 저문 산은 그림을 그리듯이 나의 눈썹을 쓸어놓고, 맑은 산기운을 살짝 문지르니 담담하기가 절묘하다는 비유법 덩치가 깊숙하게 숨어 있다. 산 그림자와 나의 눈썹의 대비, 산기운을 문지르니 담담했다는 표현들은 시인 특유의 비유법을 쓸어내리고 있어 보인 작품이다. 화자의 비유법은 어지러운 까마귀 떼와 소소한 옛 성의 대비한다. 소나무 끝에 달 돋으니 까마귀 떼 어지러운데, 옛 성의 가을 대나무 숲에는 찬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다. 비유법을 곱게 색칠해 내더니만 웅성거리는 까마귀 떼와 찬바람이 불어오는 옛 성이란 대구적인 시상의 비유법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 그림이 눈썹 쓸고 담담하기 절묘하네, 까마귀 떼 어지럽고 대나무 숲 찬바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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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학자다. 선대는 신라 알지왕의 후예인 원성왕의 아우 주원(周元)의 후손으로 알려진다. 무반 가문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충순위를 지낸 아버지 김일성과 어머니 울진 선사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暮山: 저문 산. 如畫: 그림과 같다. 掃蛾眉: (나의) 눈썹을 쓸어놓다. 輕抹: 가볍게 문지르다. 晴嵐: 산기운. 淡亦奇: 담담하기가 절묘하다. // 月上: 달이 떠오르다. 松梢: 소나무 끝. 鴉亂陣: 까마귀 떼가 어지럽다. 故城: 옛 성. 고성. 秋籜: 가을 대나무 숲. 有寒吹: 찬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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