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성과 감성을 지닌 판사는 없을까?
요즘 이성과 감성을 지닌 판사는 없을까?
  • 이상수 시민기자
  • 승인 2021.01.0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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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전 호남대학교 교수
이상수/전 호남대학교 교수

요즘 재판부를 향해 정치재판, 여론재판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피고인의 죄에 대한 판결은 법에 따른 이성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감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근 정경심 1심 재판부가 판결을 내린 후 소감을 물어본 행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오래 된 얘기이긴 하지만 미국 라과디아(La Guardia) 판사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1930년 어느 날이다. 미국의 뉴욕재판소 라과디아 판사는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절도혐의로 기소된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다. 사흘을 굶은 노파는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눈에는 보이는 게 없어서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이다.

라과디아 판사는 노인의 딱한 사정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곧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노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관대하게 선처할 줄 알았던 방청석에서는 뜻밖의 단호한 판결에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라과디아 판사는 논고를 계속했다.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논고를 계속했다. “이처럼 배고픈 사람이 뉴욕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도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죄로 이 벌금을 제가 내겠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남의 빵을 훔쳐 먹게 된 것은 이 사람 때문이 아니라 제 탓입니다. 저는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판사로서 이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어 판사는 “그래서 나는 나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 모두에게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았습니다. “경위, 당장 모두에게 벌금을 거두시오.”말했다.

판사는 모자를 모든 방청객들에게 돌리게 했다. 아무도 판사의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거두어진 돈은 57달러 50센트였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었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다.

이 판결을 정경심 1심 재판으로 치환해본다. 정경심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판결 소감을 물었다. 정 교수는 “변호인이 저를 대리하면 안 되겠느냐”며 울먹였다. 임 부장판사는 “안 된다. 피고인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다.
정 교수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임 부장판사는 “특별히 할 말이 없으면 안 해도 된다. 구속 사실을 조국씨에게 전달하면 되겠느냐”고 했고, 정 교수는 “네”라고 답했다. 임 부장판사가 한 번 더 “할 말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정 교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어느 매체에 의하면 임 판사가 심급이 종료되었으니 변호사 조력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소송대리인의 범위는 수임한 소송사무가 종료하는 시기인 당해 심급의 판결을 송달받은 때까지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5. 12. 26. 선고 95다24609 판결 참조).’라고 했다. 변호사 조력을 받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이성적인 조치라고 할 수 없다. 어느 매체는 임 판사의 발언이 합당한 것인 것처럼 형사소송법 ‘제72조(구속과 이유의 고지)’의 근거를 제시했다.

언론들의 전후 맥락을 보면 정 교수에게 소감을 물어본 것 같이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변호사 한 분은 "변호사 10년째 하고 있지만 중형을 선고한 뒤에 피고인에게 소감 어떠냐고 물어본 판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런 판사가 있다는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처음에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 지지자들이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잘못 돌고 있는 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진짜로 물어봤단다.

어느 변호사는 판사가 재판 중에 피고인의 입장을 물어보고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피고인의 태도를 판결에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판결을 선고한 뒤에, 그것도 선처하는 판결이 아니라 중형을 선고한 뒤에 소감을 물어보았다. 이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경악할 일이다고 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각종 검사를 하는 이유는 검사 결과를 통하여 처방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재판정에서 더더구나 중형을 선고한 직후 소감을 물어본 판사의 의도는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피고가 소감을 말하면 의사처럼 어떤 처방을 내릴 재판구조가 되었는가?
안타까운 사정을 말 한다고 한들 피고의 청을 들어줄 재판 구조는 아니잖는가.

정 교수 재판부 판사에게 묻고 싶다. 대체 왜 물어봤는가?
개인적 감정이나 금전적 목적으로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국가공무원으로서 공익을 대표해서 법률을 적용하는 판사가 이미 판결을 선고한 뒤에 피고인에게 소감을 물어보는 이유는 뭐였나? 소감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면 어쩌려고 했나?

아무런 대안도 없으면서 소감을 물어봤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성적인 재판보다 나쁜 감정이 지나치게 반영된 재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앞으로 정치적 성향과 정치적 영향에 지배받지 않고 라과디아 판사처럼 이성에 가치기준을 둔 판결과 인간적 감성을 지닌 판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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