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4) 야좌즉사(夜坐卽事)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4) 야좌즉사(夜坐卽事)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12.28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많은 근심스런 생각은 쇠잔한 꽃에 붙이었네

선현들의 시상은 자연에서 얻는 것이 많으면서도 보는 순간 기승전결起承轉結을 얽혀냈다. 곧 즉사卽事의 한 줌을 일구어냈다. 시격에도 맞았고 감성까지고 빼곡하게 담아냈었다. 대낮보다는 밤중에 일으킨 시상이 더 많았음을 볼 때 고요한 가운데 시심의 발동되었음을 알게 한다. 현대 시에서 얻은 시상과는 많이 달랐음을 알게 한다. 뜰에 가득한 꽃과 달이 비단 창에 비치더니, 꽃은 쉬이 바람을 따르고 달은 쉬이 기운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夜坐卽事(야좌즉사) / 상우당 허종

가득한 꽃과 달이 비단 창에 비치며

꽃들은 바람 따라 달은 쉬이 기울고

달밤에 근심스러움 쇠잔한 꽃 붙이였네.

滿庭花月寫窓紗   花易隨風月易斜

만정화월사창사   화역수풍월역사

明月固應明夜又   十分愁思屬殘花

명월고응명야우   십분수사속잔화

한 많은 근심스런 생각은 쇠잔한 꽃에 붙이었네(夜坐卽事)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상우당(尙友堂) 허종(許琮:1434∼149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뜰에 가득한 꽃과 달이 비단 창에 비치더니 / 꽃은 쉬이 바람 따르고 달은 쉬이 기우는구나 // 밝은 달은 진실로 내일 밤에 다시 비치련만 / 한 많은 근심스런 생각일랑 쇠잔한 꽃에 붙여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밤에 앉아 쓴 즉흥시]로 번역된다. 흔히 시제를 이처럼 [卽事]로 놓는 경우도 많았음을 볼 때, 즉흥시가 시적인 감흥이 대단했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면서 쉽게 져버린 꽃과 한 달에 한 번씩 상현달로 커졌다가 하현달로 기우는 달의 모양 속에서 숱한 사연을 연관지었다. 시인은 꽃과 달을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있지만, 쉽게 지고 꽃과 쉽게 기우는 달이란 공통분모는 같았다. 그렇지만 달은 내일 다시 뜨지만, 꽃은 내일 피지 않기 때문에 공통분모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뜰에 가득한 꽃과 달이 창에 비치고 있지만, 꽃은 쉬이 바람을 따르고 달은 쉬이 기운다는 시상을 보인다. 선경先景의 시상은 완만한 등가곡선 속에 시인의 속사정과 연관지어보려는 완만함을 보인다. 화자의 심회에 찬 한 마디는 달 보다는 꽃의 속사정을 투영시키는 묘미를 부리고 있음을 보인다. 밝은 달은 진실로 내일 밤에도 비칠 수가 있어 재회가 가능하지만, 한 많은 근심스런 생각은 쇠잔한 꽃에 붙여본다는 속 깊은 뜻을 담아내고 있다. 우리 선현들은 즉사卽事란 즉흥시 속에 한 많은 사연을 붙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꽃과 달이 창에 비춰 바람은 하루 기우네, 밝은 달은 다시 뜨나 한 많은 근심 꽃에 붙여’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상우당(尙友堂) 허종(許琮:1434∼1494)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69년(예종 1) 평안도관찰사·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고, 전라도에서 일어난 장영기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병조판서에 올랐다. 1471년 성종 즉위 후 순성좌리공신 4등에 책록되었다. 호조판서와 우찬성를 지냈다.

【한자와 어구】

滿庭: 뜰어 가득하다. 花月: 꽃과 달. 寫: 비치다. 窓紗: 비단 창가. 花: 꽃. 易隨風: 쉽게 바람을 따르다. 月易斜: 달은 쉽게 기운다. // 明月: 밝은 달. 固應: 진실로 응다. 明夜又: 내일 밤에 비치다. 十分愁思: 한 많은 근심스런 생각. 屬殘花: 쇠잔한 꽃에 붙어있다. 애잔한 꽃의 꿈을 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