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극장’으로 꽃피우다
광주극장,‘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극장’으로 꽃피우다
  • 박병모 기자
  • 승인 2020.12.07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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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85년의 역사·현재·미래를 담은 동화책 출간
관객과 고양이 ‘씨네’가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
올 우수출판콘텐츠 선정…글 김영미·그림 최영호 참여
​​​​​​​매표소·영사실·오월 그날 극장 피신 등 추억 소환

광주시민들에게 가장 낯익고, 오래되고, 새록새록 정이 들었던 ‘광주극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극장’이 그림책으로 출간됐다.

85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광주극장'이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극장'으로 출간됐다 

올해 여든 다섯이라는 세월이 말해주듯, 그동안 세월의 아픔을 오롯이, 그리고 우여곡절 속에서도 문화도시 ‘광주’명맥을 이어왔던 광주극장(나)과 이곳에 사는 가상의 고양이 ‘씨네’가 주인공으로 함께 등장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극장’의 그림과 글은 광주 출신 작가들이 맡았다. 국내 대표 그림책 출판사인 ‘보림출판사’에서 펴냈다.
어릴 적 광주극장을 자주 다녔고 지금도 단골인 김영미(67) 동화 작가가 글을 썼다.
그림은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다녔고 역시 광주극장에 대한 추억을 깊이 간직한 최용호 작가가 그렸다.

광주대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김영미 작가는 시간이 날 때면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연속해서 볼 정도로 광주극장을 사랑했다. 
김 작가는 글을 쓰면서 원고를 9번이나 다듬었다.
자료가 충분치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극장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기억의 파노라마’를 펼쳐놓았다는 평을 듣고 싶어 욕심이 앞선 나머지, 혹시 놓친 부분은 없는 지, 겉만 건드린 것은 아닌지 고민도 많았었다.

85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현존 유일의 단관극장 '광주극장'
광주시민들에게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현존 유일의 단관극장 '광주극장'

김 작가가 광주극장과의 인연과 추억을 소환하게 된 배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특별한 즐길 거리가 없었기에 영화는 최고의 오락거리였다는 점을 든다. 목포에서 자란 김 작가는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 따라 어릴 적 그곳 남일극장 등에 다녔다.
광주로 시집을 온 뒤 광주극장에 들어설 때는 커다란 스크린을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다. 쇠락해가는 광주극장만의 풍경들이 눈에 짓밝히면서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우러나오면서다.
실제로 시대 변화에 따라 낡은 빛으로 퇴색돼가고, 한때는 변화 없이 클래식한 광주극장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찬란하게 광주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문화공간으로 꽃피우게 되면서 그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는 광주극장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어 행복하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김 작가는 이번 책을 출간하면서 고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나, 특히 극장과 학교재단 유은학원의 창업주였던 최선진 선생의 과거 광주 교육을 위한 애정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김 작가와 함께 작업에 나선 최용호 작가의 그림은 ‘사실적’이다.
세종대 회화과와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최 작가는 현존하고 있는 공간을 ‘기록한다’는 의미에 방점을 두었다.
그런 그에게 극장 관계자들은 영사실에서 쏘는 빛이 객석으로 어떻게 쏟아지는 지 담은 사진 등 다양한 현장 사진과 자료를 제공해 작업을 도왔다.

7080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한 번쯤 추억을 소환할 만 얘기들을 제공했다.
“오징어! 땅콩!”을 외치며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던 매점 아저씨의 모습, 극장 밖으로 길게 늘어선 관객들의 모습, 지금은 사라진 멕시코 다방과 북경반점, 관객이 가득찰 때면 극장 식구들이 함께 나누던 ‘만축(滿祝)’ 봉투, 극장 뒷문으로 몰래 드나들던 학생들의 모습, 1980년 5·18 당시 극장으로 숨어들던 사람들, ‘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터가 걸린 간판실 등이 그거다.
이런 소소한 얘깃거리가 바로 광주극장의 역사가 됐고, 오랜 빛바램 속에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의 요람으로 자리매길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광주극장만큼 열혈 팬이 많은 공간도 없다. 500여명의 후원자가 꾸준히 마음을 보태고 있다. 극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제 일처럼’ 나서는 이들도 많다.
그들을 위해 광주극장은 그림책 속 원화를 실사 출력해 포토존을 조성할 예정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림책 원화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출간된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극장’이라는 책의 줄거리는 1968년 잿더미가 된 광주극장 화재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나(광주극장)와 극장 터줏대감 고양이 ‘씨네’가 이야기로 들려주는 이 책은 지난 2016년 봄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 이상희씨가 광주극장 안주인 김기리 시인을 만나면서 기획됐다.

광주극장이 85년 동안 누가 알아줄까, 몰라줄까 연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일관성 있고 정체성 있는 영화를 상영해온 것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그림책을 접하는 광주시민들은 과거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가슴 졸이기도 하고,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영화들에 감동받으며 행복해했던 시절들도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다.

아마도 광주극장을 한번 이상 오간 적이 있는 광주시민들이라면 낯익은 매표소, 간판실, 커다란 스크린을 좌석’을 발견하고는 추억의 미소로 입가를 적시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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