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1) 설매(雪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01) 설매(雪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11.3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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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찬연히 빛나는 봄을 비로소 깨달았구나

평양기생이 지은 시조에 [매화 넷 등걸에 춘절(春節)이 도라오니 / 녜 픠던 가지에 픠엄즉 다마 /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니 필 말 여라]라고 했다. 위의 시조는 유춘색이라는 사람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매화와 가까이 지냈으나 나중에는 춘설이라는 기생을 가까이 하자 매화가 원망하며 지었다고 유래한다. 설매도 같은 맥락이겠다. 남쪽 가지에 싸늘하게 핀 흰 꽃이 맺혀있고, 비로소 눈을 얻었으니 정신이 들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雪梅(설매) / 사숙재 강희맹

남쪽 향한 가지위에 싸늘한 하얀 꽃

하얀 눈의 얻음인가 정신이 드는 데

맑음의 향기이기에 천지 봄을 알았다네.

南枝上寒白   得雪更精神

남지상한백   득설갱정신

賴有淸香動   始知天地春

뢰유청향동   시지천지춘

천지에 찬연히 빛나는 봄을 비로소 깨달았구나(雪梅)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 ~148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남쪽 가지에 싸늘하게 핀 흰 꽃이 맺혀있고 / 비로소 눈을 얻었으니 더욱 정신이 드는구나 // 비로소 너의 그 맑은 향기로 인하여서 / 천지에 찬연히 빛나는 봄을 깨달았으니 다행이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겨울 매화]로 번역된다. 자연에서 시제를 가져와 선택했던 경우가 대종을 이룬다. 특히 설매雪梅를 시제로 선택했던 경우는 많았다. 시제가 같다고 하더라도, 시상이 다르고 내용이 달랐기 때문에 시의 흐름은 그만큼 달랐다. 이런 면을 감안하고 본다면 시인의 시상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남쪽 가지에 눈을 딛고 도톰하게 피어있는 매화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애잔한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시상을 이끌어냈다. 남쪽 가지의 싸늘한 흰 꽃이 눈을 얻어 더욱 정신을 차리고 있을 것이란 시심을 발휘했다. 추운 겨울을 피워 물었기 때문에 싸늘하다는 용어를 선택했고, 눈雪을 얻었기 때문에 정신이 든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생각되기(?)때문이다. 화자는 겨울에 싸늘한 눈을 딛고 피어난 매화를 보면서 후정後情의 다정한 모습을 담아야 할 엄숙한 순간을 인지하였으리라. 비로소 너의 그 맑은 향기로 인하여 천지에 찬연히 빛나는 봄을 깨달았으니 다행하다고 했다. 설매는 이를 바라보는 시인들의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무릅쓰고 피어있는 인고의 아픔을 참아냈기 때문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싸늘하게 핀 꽃이 맺혀 정신 더욱 드는구나, 너의 향기 인하여서 찬연한 봄 깨달았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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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경사와 전고에 통달했던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림과 산수화도 잘 그렸다고 한다. [경국대전] 편찬과 사서삼경의 [언해]·[동문선]·[동국여지승람] 등 편찬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자와 어구】

南: 남쪽. 枝上: 가지 위. 寒白: 싸늘한 흰 꽃. 흰 매화를 뜻함. 得雪: 눈을 얻다. 눈을 맞고 서 있다. 更: 더욱 더. 精神: 정신이 들다. // 賴: 의뢰하다. (‘너’인 매화를) 의지하다. 有: 있다. 淸香動: 맑은 향기가 움직이다. 맑은 향내가 나다. 始知: 비로소 알다. 天地春: 온 천지가 봄이다. 매화가 피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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