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예언
이건희 회장의 예언
  • 문틈 시인
  • 승인 2020.10.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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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일본 오사카 어느 호텔. 밤 12시. 그룹사 간부 회의가 열렸다. 한참 잠을 자야 할 시간에 모든 간부들이 극장처럼 넓은 공간에 잔뜩 긴장한 채 자리했다. 기침 소리 하나 없다. 이건희 회장은 단상 위에 탁상을 마주하고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웠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말없이 한참 있다가 느닷없이 앞줄에 앉아 있는 신문사의 고위 간부를 향해 질문을 했다. “사회부장, 당신의 인사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신문사의 부장급 인사는 일차적으로 편집국장에게 있지만 사장과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회장이 이런 평범한 질문을 할 리가 없다. 질문을 받은 사회부장이 답을 머뭇거리자 이 회장은 이번엔 “편집국장, 당신의 인사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 회장은 스스로 답을 내놨다. “잘 들으시오. 인사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 인사권이 내게 있다고? “능력 있는 기자는 부장들이 서로 데려가려 하고, 명민한 부장은 회사가 요직에 앉히려 하고 이게 다 자신의 능력과 실력에 달려 있습니다.”

윗사람에 잘 보이고, 오래 근무하면 자리를 옮기고 승진하는 것이 아닌가? 보통 회사원들이 하는 그런 생각을 부숴버리는 말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은 각 부서에게 서로 끌어가려 하기 마련이고, 출중한 인재는 발탁 승진을 해서 동료보다 먼저 중요 포스트에 올라가서 일한다. 삼성그룹은 그런 식으로 경영하여 세계 일류 회사가 되었다.

그날 밤, 눈꺼풀에 맺힌 잠도 잊어버린 채 이 회장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내 일생에서 드문 경험을 했다. 그날 밤 들은 이야기 가운데 기억나는 몇 가지는 담배를 끊지 못해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는 단순한 내연기관이 아니라 장차 전자제품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식견 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회장은 아버지를 잘 만나 그룹의 회장이 된 것 아니냐는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자동차는 지금 컴퓨터에 바퀴를 단 전자제품으로 바뀌고 있다. 내가 처음 입사를 했을 때 작은 팸플릿을 받았다.

그 작은 책자에는 클론(복제)에 관한 내용이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미래엔 생명체를 복제할 날이 올 것이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마릴릴 몬로의 같은 얼굴 그림이 수십 개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회장이 말한 예견들은 놀랍게도 오늘 우리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이 회장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회장은 범상치 않은 아이디어와 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

때 이 회장의 미래 비전 이야기를 들으면서 몹시 감명을 받았던 나는 ‘저런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면 나라가 확 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후로 나는 이 회장에 대한 삐딱한 인식을 더는 갖지 않았다.

70년대 초 이 회장은 ‘삼성을 재벌이라고 하지만 세계 시장에 나가면 구멍가게만도 못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한참 재벌을 부정적으로 보던 흐름에 일갈을 한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의 상품이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존재감이 미미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30, 40년 후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우뚝 섰다.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도쿄… 세계의 어느 대도시를 가도 삼성 간판이 주요 거리에서 코리안의 자긍심을 한껏 부풀리게 한다. 코리아는 몰라도 삼성을 모르는 지구인은 없을 정도다.

나는 누가 재벌을 욕할 때면 이렇게 말한다. “자네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제. 그거 다 삼성이 달러 벌어 와서 그렇게 된 거야.” 물론 과장이 심한 말이지만 외화를 벌어오는 기업이 없다면 우리는 당연히 계단으로 걸어 다녀야 한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이 200만 달러가 넘는다니까.” 흥, 말도 안되는 소리다. 한국돈으로 자기 아파트가 20억원이 넘으니 200만 달러 나간다고? 그 말은 기업이 외국에서 달러를 벌어왔을 때에만 성립하는 말이다. 대체 달러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나라의 모든 집을 달러로 쳐줄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발전 과정에서 공과가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한국기업은 이 회장이 남긴 유산 위에서 최일류 기업으로 거듭남으로써 사업보국, 인재제일의 비전을 펼쳐나가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2020년 10월 25일. 서울 삼성병원. 이건희 회장은 7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으니 사실상 72세에 그의 삶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오사카에서 그날 밤 이 회장이 예견한 대로 일찍 세상을 하직한 셈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2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입버릇처럼 늘 인재육성을 강조했던 이 회장은 천재 100명에 값하는 삶을 살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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