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보완론', 그 음험한 속임수
'평준화 보완론', 그 음험한 속임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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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선거시기에 교육정책 관련 두가지 문제를 풀어야 함을 지난 호에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은 “평준화와 서열화(학벌주의)라는 한국교육의 일대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방향으로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논하라”고 하는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001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제도교육과 관련한 의미있는 항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쉬 생각하듯 진보적 개혁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항쟁이 아니다. 바로 수구기득권세력과 보수적 중상류층의 반동적 회귀를 위한 항쟁이니 그 치열한 접점이 바로 '평준화 성패론'이다.

2001년에 이르러 조선, 중앙, 동아 등의 보수·수구 언론들은 '교육이민', '평준화가 교육을 망쳤다'와 같은 공격적 담론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쏟아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어느덧 '하향평준화'와 '획일화'라고 하는 것이 입증된 사실인양 유포되고 있다. 또한 마녀사냥식 담론으로 논점도 불명확한 채 공교육을 몰아세우는 황색언론의 비틀린 나팔은 교육개혁을 기원하는 시민운동의 목소리까지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정서적으로 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 성과는 지대했다. 정부 부처에서도 평준화 폐지론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금년 2월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원이 발표한 『비전 2011』이 그 시작이며, 전경련 또한 4월 발표자료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담론몰이를 하고 있다. 신임 부총리 이상주 장관은 이에 대해 '평준화 보완론'으로 맞섰다. 그 요지는 자립형 사립학교와 자율학교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간다는 것이다.

다양성 선택권논리 실종


이는 다시 2002 대선 후보들의 정책공약에도 의미 있는 대립축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평준화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민주당은 평준화 보완론에 무게를 둔 공약을 발표하였다. 현재의 학교를 일제 때보다 못하다고 말하며 자본의 논리를 교 육에 들이미는 훌륭한 첨병, 경제부총리 진념은 이제 민주당의 경기지사 후보가 되었다.

구시대 '평준화 폐지론'은 과거 공립명문고 부활론이었지만, 지금의 '폐지론'은 자립형 사립학교를 입시 명문고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다양성'이나, '선택권'의 논리란 찾아보기 어렵다. '획일화'의 원인은 현재의 입시경쟁구조와 국가교육과정에서 찾아져야지 '평준화'의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자립형 사립학교가 말하는 다양화와 특성화란 사실상 허울 좋은 이름에 불과하며, 현재의 입시제도에 기대어 서열화의 꼭지점에 서겠다는 것이다.

즉 '폐지론' 대 '보완론'의 논쟁구도, 이는 기만일 뿐이다. 결국 '보완론'은 '폐지론'의 다른 이름이다. 올 초 어느 월간지와 인터뷰에서 진념 부총리가 밝혔듯이 보완론과 폐지론은 단지 '속도'만 다를 뿐, 결국 평준화 폐지를 정책의 방향으로 삼는 것이다.

'보완론'이란 교육투자능력을 가진 중상류층과 일반 서민의 자녀들을 분리시키는 계급분리적 학교의 '다양성'만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열화를 고수하려는 학벌주의의 대음모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 정점에 서울대가 있다. 서울대는 이미 내신반영을 위한 '고교 등급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지않았는가?

'보완론'은 결국 평준화제도를 허물어뜨릴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다. 자립형 사립학교의 운명 또한 그렇다. 결국 협력과 상생의 힘을 키우는 교육의 공공성은 논외로 하고, 이제 경쟁논리에 기반한 시장경제의 원리로 교육을 해체,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평준화의 문제는 그 형식의 문제이기보다 그 내용의 미숙성이다. 교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바, "수재부터 둔재까지 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라니 누구 수준에 맞춰야 하는가. 상위권에 맞추면 나머지는 넋빠진 표정이고 중간 이하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면 우수생들은 교사를 거들떠도 안본다"(동아2002.3.4)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신의 교수방법과 수업난이도에 학생들이 맞추어 줄 것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평준화가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이질적 학생집단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교수방법의 개발과 풍토의 변화 없이 여전히 과거의 비평준화식 교수법으로 일관하는 교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지적은 이러한 교수방법이 여전히 현실적으로 통할 수 있는 현재의 입시방식과 이와 관련한 대학의 서열화가 문제의 진원지인 것이다.

평준화는 단지 다양한 협력과 상생의 교우관계를 만들어내는 기반일 뿐이다. 그러므로 평준화의 보완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보완'이란 입시명문 사립학교를 새로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대학의 서열화 폐지와 다양성을 축으로 하는 다양한 입시 전형, 국가교육과정의 폐지, 이에 따른 공사립 학교 주체들의 학교모델의 다양화, 소신껏 각자의 교육방식을 계발해 나가는 것을 내용으로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군사정권 박정희 표 '평준화'의 한계를 지양(止揚)하는 탈출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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