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이야기
동생 이야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0.10.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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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남1녀 중 맏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로 형제들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산다. 모두들 건강하고 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복 받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형제들 중 막내 동생과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다. 서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공통된 화제가 많아서다.

사실은 그것도 이유가 되지만 막내가 거의 전담하여 어머니를 보살피다시피 해서다. 나는 매일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하는데 어떤 때는 한나절 내내 전화가 안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걱정스런 마음이 들어 곧잘 막내를 찾는다.

“아침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안된다. 네가 좀 어머니 집에 가봐야 쓰겄다.” 걸핏하면 이런 전화로 막내를 성가시게 한다. “아따,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큰형이 여기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쇼.” 때로 막내는 퉁명스럽게 답할 때도 있다. 그냥 해본 소리일 뿐 불평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건넌방에서 재봉틀 일을 하셨다요. 걱정 마쇼.”

어머니는 막내를 키울 적에 애를 먹을 때가 많아 속을 좀 끓이셨다는데 만년에 막내네 자랑에 여념이 없으시다. 손주들이 여간 수말스럽다느니, 며느리가 착하다느니. “오늘도 여기 와서 점심 먹고 갔단다.” 막내는 불쑥 어머니 집에 들어가 “밥 먹을라요”하고는 어머니가 차려준 식사를 하고 나갈 때가 있는 모양이다. 마치 어머니가 집에서 데리고 살던 까까머리 어릴 때처럼.

막내는 아들 딸 자식을 둔 50대의 어엿한 가장이지만 어머니 집에 가면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막내아들이다. 막내는 지금도 어머니 집을 찾아가 잠깐 졸음이 올 때는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고이고 눈을 붙인다. 그러니 어머니가 얼마나 막내를 사랑하는지 짐작도 못할 판이다. 만일 어머니가 언젠가 돌아가신다면 막내가 그리워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다.

물론 어머니가 막내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딸 자랑도 자주 하신다. “과일 안 떨어지고 먹고 산다.” 딸이 과일, 생선, 이바지를 자주 가져다주어서 어머니는 늘 ‘맛있는 것’을 들며 산다고 하신다. 늙으신 어머니를 보살피는 마음이 아들보다는 아무래도 딸이 더 깊고 은근하다.

나는 늘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어머니가 살아계신 사람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이 생전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어머니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 자식들에게 큰 복을 주시는 분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런 존재다.

가톨릭으로 말하면 성모 마리아의 은총, 불교로 치면 보살의 자비심 같은 마음을 가진 거룩한 분이 어머니다. 그러므로 모든 세상의 아들 딸은 마땅히 어머니를 사랑하고 공경하고 보살펴드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사람노릇이 아닐 것인가.

“어머니, 이번 추석 때는 집에 아무도 못오게 하쇼.”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되어 귀가 잘 안들리는 어머니께 큰 소리로 말씀을 드렸더니 “어떻게 그런다냐? 그러면 나 혼자 추석을 보내란 말인디.” 결국 활동량을 제한해서 극히 조심조심 지내는 막내가 어머니와 함께 추석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코로나 감염 경로에서 가족과 지인이 옮기는 율이 가장 높다고 들어서다. 코로나도 물리고 어머니는 추석을 막내네와 함께 보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내 마음은 멀리서 아슬아슬하다. 다른 자식들은 못갔다. 모두들 동선이 다르게 살아 자칫 어머니가 감염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추석 때 60대의 부부가 80, 90대의 부모집을 갔다가 부모가 다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머니 연세가 구순이 되었을 때 나는 약속을 해달라고 떼를 쓰듯 간청했다. “어머니, 백세 넘을 때까지 사셔야 해요.” 순전히 내 욕심 섞인 바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영원히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다른 형제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책에서도 읽지 못한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나는 그 위로와 지혜의 말씀을 들으며 사는 것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건 하느님이 알아서 하는 것이제. 사람은 늙으면 다 놓고 가는 것이제.” 어머니는 벌써 전에 아버지 산소 곁에 가묘를 써놓으셨다.

“막내야, 네 동선을 엄청 조심하거라. 어머니가 감염되면 큰일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어머니를 위해 마음을 다한다. 막내는 조심스레 어머니를 보살펴드리고 있다. 아, 막내 동생을 둔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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