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3) 계해원일회례연(癸亥元日會禮宴)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3) 계해원일회례연(癸亥元日會禮宴)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10.05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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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에 헌수하고 난 후에 임금님을 배알했네

청백리는 하늘이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활이 청렴결백할 뿐 아니라 겸손과 미덕을 고루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하는 행동은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할 뿐 만아니라 만인의 사랑을 고루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의 신임이 두터워 구십이 되도록 영의정의 자리에 있으면서 만조백관의 어른 노릇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금님을 아뢰었더니 요전은 봄바람 속에서 해가 밝아오는데, 많은 신하들은 각자 한껏 즐거워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癸亥元日會禮宴(계해원일회례연) / 방촌 황희

구십의 평생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삼원에 헌수하며 임금님 뵈웠는데

요전에 많은 신하들 봄바람을 즐기네.

九九年來押百官   三元獻壽對天顔

구구년래압백관   삼원헌수대천안

日明堯殿春風裏   多少群臣各盡歡

일명요전춘풍리   다소군신각진환

삼원에 헌수하고 난 후에 임금님을 배알했네(癸亥元日會禮宴)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방촌(厖村) 황희(黃喜:1363~1452)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구십 평생에 모든 백관을 두루 거느리고 / 삼원에 헌수하고 난 후에 임금님을 배알했네 // 요전은 봄바람 속에서 해가 밝아오는데 / 많은 신하들은 각자 한껏 즐기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계해년 초하룻날 회례연을 베풀다]로 번역된다. 간지로 계해년癸亥年이면 방촌의 나이 81세인 1443년이 아니었는가 본다. 청백리로 알려진 시인이 영의정의 자리에 있으면서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정월 초하룻날 당시의 임금이었던 세종을 배알했던 모양이다. 훈민정음 초안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무렵이었을 것이니 우리글의 서광이 보인 단계다. 시인도 팔십을 넘어 구십 길목에 들어선 나이다. 성군을 모시는 백관의 우두머리 자리에서 자기의 소임을 다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시상이다. 구십 평생에 백관을 모두 거느리고, 삼원 三元인 정월초하룻날 헌수獻壽하면서 임금님을 배알했다는 시상을 일구어 냈다. 나이가 연만했던 만큼 상하좌우를 두루 살피면서 정사의 정상에 서서 성군을 지성으로 모시었을 것이다. 화자는 임금님 앉으신 자리가 봄바람을 타고 점차 밝아지면서 성군의 만수무강을 한껏 축원하면서 기뻐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요전은 봄바람 속에서 해가 밝아오는데 / 많은 신하들은 각자 한껏 즐기는구나]라는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비유법은 다소 미흡하지만 새해 새 소망을 담아냈으리라.

위 감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만조백관 거느리고 임금님을 배알했네, 요전의 봄 밝아온데 신하들은 즐기면서’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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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방촌(厖村) 황희(黃喜:1363~1452)로 조선 전기의 재상이다. 1449년(세종 31) 벼슬에서 물러날 때까지 18년간 국정을 관리하였다.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천첩 소생의 천역(賤役) 면제, 국방강화(야인과 왜 방어책), 4군6진 개척, 문물제도의 정비·진흥 등의 업적을 남겼던 청백리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九九年來: 구십 평생이 돌아오다. 押百官: 백관을 거느리다. 三元: 삼원. 연, 월, 일의 ‘처음’이란 뜻. 정월 초하루 아침. 獻壽: 헌수. 對天顔: 임금님을 배알하다. // 日明: 해가 밝다. 堯殿: 요전. 임금님 계신 곳. 春風裏: 봄바람 부는 속에. 多少: 다소의. 群臣: 군신들. 各盡歡: 각자가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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