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1) 야(夜)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1) 야(夜)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9.2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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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둘러싼 벌레소리만 나그네 수심 달래네

깊은 밤이 되면 온 우주가 잠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이 온통 고요하기 때문이다. 풀벌레 소리가 정적을 깨는가 싶더니만 달빛을 받아 입에 물고 있는 시냇물 소리만이 고요함에 반주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공이라고 잠에서 깨어나 장단을 맞추었으면 좋으련만 이 사람마저 깊은 잠에 취했었나 보다. 긴 강에 달빛이 가득하고 물은 저절로 흐르는데, 사공은 그만 잠에 빠져 밤은 아득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夜(야) / 척약재 김구용

달빛은 가득하고 맑은 물 흐르는데

사공은 잠에 빠져 밤마다 아득하고

쌀쌀한 가을 하늘에 벌레소리 들리네.

月滿長江水自流   舟人睡熟夜悠悠

월만장강수자류   주인수숙야유유

凄淸恰似秋天日   繞岸蟲聲弔客愁

처청흡사추천일   요안충성조객수

언덕을 둘러싼 벌레소리만 나그네 수심 달래네(夜)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1338~138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긴 강에 달빛이 가득하고 물은 저절로 흐르는데 / 사공은 그만 잠에 빠져 밤은 아득하구나 // 쌀쌀하고 맑음은 마치 가을 하늘 날씨인데 / 언덕을 둘러싼 벌레소리만 나그네 수심을 달래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깊은 밤에는]으로 번역된다. 깊은 밤은 온 세상이 고요하기만 하다. 낮을 할퀴고 간 신도 그만 잠이 들었을지 모른다. 고기잡이를 나갔던 어부도 그물 당기는 일을 그만 잊고, 잠에 취하여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온 천지가 고요하기만 한데, 귀뚜라미 소리만이 합창이라도 하는 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웅성거리고 있다. 시인은 이런 깊은 밤의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는 고요함 속에서 선경의 시상을 일으켰다. 긴 강에 달빛이 가득하고 물은 저절로 흐르기만 한데, 사공은 그만 잠에 빠져 있는지 밤은 아득하기기만 하다는 시상이다. 밤을 소묘하는 아득한 정적을 느끼게 하는 영락없는 한 폭의 그림이다. 배만 우두커니 놓여있고 사공이 없이 딴 전을 부리고 있다. 화자는 늦가을의 선경先景에 흠뻑 취하여 후정後情 읊기가 매우 바빴던 모양이다. 그래도 못 다한 경치 한 구절을 엮기에 여념이 없다. 쌀쌀하고 맑음은 마치 가을 하늘 날씨가 분명하다고 하면서 종장의 한 구절로 마음을 달랜다. 사방 언덕을 둘러싼 벌레소리만이 나그네의 깊은 수심을 달래고 있다는 시상의 구물을 듬성듬성하게 엮어 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달빛 가득 물은 절로 깊은 밤은 아득해라, 가을 날씨 쌀쌀한데 벌레소리 수심 달래니’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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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1338~1384)으로 고려 후기의 문인이자 학자이다. 1353년(공민왕 3)에 16세로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예부시에도 급제했다. 경학에 밝았으므로 1367년 성균관이 중건된 후 정몽주, 박상충, 이숭인 등과 함께 학관으로 선발되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月滿: 달빛이 가득하다. 長江: 긴 강. 水自流: 물은 저절로 흐르다. 舟人: 사공. 睡熟: 숙면하다. 잠에 빠지다. 夜悠悠: 밤이 아득해라. // 凄淸: 쌀쌀하고 맑다. 恰似: 흡사. 秋天日: 가을 하늘 날씨. 繞岸: 언덕을 둘러싸다. 蟲聲: 벌레소리. 弔: 조문하다. 여기선 달래다. 客愁: 나그네의 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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