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난 길
책 속으로 난 길
  • 문틈 시인
  • 승인 2020.09.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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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를 승리하는 지혜의 숲으로

 

코로나 때문에 주로 집에서 지내다 보니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고 독서를 자주 하는 편이다. 엊그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었고, 오늘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요즘 같은 마음이 불안한 때에 위로와 힘을 얻기 위해서다. 책에서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다고? 그렇다. 나는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평안이 필요할 때는 서가에서 책을 찾아 읽으며 마음을 추스른다.

내가 현실을 버티며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햄릿을 읽으며 뇌수에 박히도록 절박한 금언들을 되새겼다. 이를테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이 숭고한가.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 대항해 무기를 들고 끝장내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것이 숭고한가.’ 셰익스피어는 내게 험난한 인생에 맞설 것을 요구한다.

공부도 많이 하지 않은 시골뜨기 출신 시인, 극작가, 연극배우였던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들에서 탁월한 언어 구사, 다양한 인생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영국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까지 했을까. 이 위대한 극작가의 작품에서 나는 자주 방향을 잃을 때마다 내 삶의 좌표를 확인하곤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책으로도 영화로도 여러 번 접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살아가면서 자주 머리에 떠오르는 내게는 나침반 같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간결한 문장에 매혹되었다가 나중에는 주인공 노인의 결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정신에 마음을 빼앗긴다.

쿠바의 작은 어촌에서 고기낚시를 하면서 살아가는 산티아고는 늙고 야윈 몸과 태양빛에 그을린 얼굴, 낚시하느라 생긴 상처의 흔적이 나 있는 두 손바닥을 가진 노인이다. 그의 작은 배의 돛은 천으로 여기저기 기웠고, 돛이 마스트에 둘둘 감아놓은 모습은 마치 패배한 낙오자의 깃발 같다.

그러나 그의 정신 즉, 파멸을 당할지언정 패배는 모른다는 헤밍웨이의 평생에 걸친 주제가 이 짧은 소설에 감동적으로 드러난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패배를 모르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거의 영웅적으로 그려져 있다.

84일 동안이나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노인은 지칠 줄 모르는 기세로 다시 멕시코만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큰 고기가 걸렸는데 노인은 돛단배를 끌고 달아나는 고기와 사투를 벌여 기어코 잡고 만다. 노인은 어마무시한 청새치를 돛단배의 옆구리에 묶고 득의에 차 귀로에 나선다.

그러나 돌아오는 중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고 작살, 칼, 삿대까지 다 잃어버리고 고기마저 다 뜯겨버려 앙상한 뼈만 남은 채로 항구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노인의 돛단배를 보고 놀란다. 엄청나게 큰 고기를 잡았다고.

낚시꾼으로서는 큰 고기를 잡았으나 상어 떼에 다 뜯기고 뼈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성과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작가는 여기서, 그 커다란 고기뼈를 내게 결말로 내놓는다. 패배를 모르는 노인의 삶과의 싸움의 결말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작가가 말하려는 것을 알 것도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백미는 그 다음에 있다. 그날 밤 피곤에 지쳐 잠든 노인의 꿈에 아프리카 밀림 속의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어흥’하고 천지를 뒤흔든다. 그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삶의 위대한 승리자였던 것이다.

‘희망을 갖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죄악이라고. 오늘은 운이 따를지 알아. 믿음을 가져야 해.’ 소설 ‘노인과 바다’에는 작가의 통찰에서 나온 깊은 지혜의 말들이 많다. 얼마나 용기를 주는 말인가. 우리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나는 이 문장을 가장 아낀다. 요즘 신종 코로나 때문에 삶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공포와 불안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찌 생각하면 이건 사는 것도 아니다. 종말론적인 세계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희망을 갖지 않는 건 죄악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진정 삶을 열심히 살았다면 그 결과가 설령 살이 다 뜯긴 물고기 뼈밖에 못 가져온 낚시꾼일지라도 당신은 인생의 승리자라고 헤밍웨이는 말한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게 된 요즘 나는 책들 속에서 위안과 평안을 얻는다. 언젠가 사자 꿈을 꾸게 될 날을 기다려보면서 말이다. 올 가을에는 셰익스피어전집에 도전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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