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0) 추사(秋思)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0) 추사(秋思)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9.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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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병풍은 도리어 비단 수놓은 원앙이 부러우리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이것은 현대문명이 던져 주는 상황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우리 선현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을 이라고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심사가 어찌 남자들에만 한정할 수 있으랴. 시인도 착잡한 가을이면 떠오르는 여러 심사가 가슴을 답답하게 적시었겠다. 무수히 서리 내린 밤 나뭇잎은 소소히 지고 옥 병풍은 도리어 비단에 수놓은 원앙이 부럽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思(추사) / 취죽

하늘은 물과 같고 달빛은 창창한데

열두 폭 비던 속에 한 사람 홀로자네

나뭇잎 소소히 지고 원앙비단 부럽네.

洞天如水月蒼蒼   十二緗簾人獨宿

동천여수월창창   십이상렴인독숙

樹葉簫簫夜有霜   玉屛還羨繡鴛鴦

수엽소소야유상   옥병환선수원앙

옥 병풍은 도리어 비단에 수놓은 원앙이 부러우리(秋思)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취죽(翠竹)으로만 알려지는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은 물 같이 맑고 달빛은 창창하기만 한데 / 열두 폭 비단 주렴 속에 오직 한 사람 홀로 자네 // 서리 내린 밤, 나뭇잎은 소소히 지고 / 옥 병풍은 도리어 비단에 수놓은 원앙이 부러우리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착잡해진 가을의 심사]로 번역된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봄에는 여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가을은 남자의 마음을 상하게 한단다.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이겠고, 가을이 되면 소소한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면서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착잡한 가을의 심사다. 따스한 임의 손길이 그립고, 포근한 임의 가슴이 따스하다. 그렇지 못한 여인의 마음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시인은 속상하는 가을을 그대로 보내기는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하늘은 물 같이 맑고 달빛은 창창하기만 한데, 열두 폭 비단 주렴 속에 오직 한 사람인 시인 홀로 자고 있다는 시상을 떠올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 빗줄기 소리를 들으면 가을의 심사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화자는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는 어느 시인의 시심을 부여안을만한 겨를도 없었다. 서리 내린 밤, 나뭇잎은 소소히 지고 옥 병풍은 도리어 비단으로 수놓은 원앙이 부러웠으리라. 착잡한 [가을의 심사]를 그대로 묻어두고 외로운 밤을 넘기기에는 마음이 너무 벅찼을 지도 모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하늘 맑고 물은 창창 주렴 속에 한 사람만, 나뭇잎은 소소하고 옥 병풍엔 원앙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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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취죽(翠竹:?∼?)인 여류시인으로 생몰연대와 그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洞天: 하늘. 如水: 물과 같이. 月蒼蒼: 달은 창창하다. 달이 매우 밝다. 十二緗: 12폭의 담황색 비단. 簾: 주렴. 人獨宿: 사람이 홀로 자다. // 樹葉: 나무와 잎. 簫簫: 소소하다. 쓸쓸하다. 夜有霜: 밤에 서리가 내리다. 玉屛: 옥 병풍. 還: 도리어. 羨: 부럽다. 繡鴛鴦: 원앙으로 수를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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