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89) 정부원(征婦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89) 정부원(征婦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9.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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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시를 짜니 비단 위의 글자들은 새롭기만 하네

회문시는 바둑판처럼 글자를 배열하여 중앙으로부터 선회하면서 읽어도 뜻이 통하는 것도 있다. 말하자면 순독(順讀)․역독(逆讀)․선회독(旋回讀)이 가능한 시가 회문시다. 고려시대부터 회문시가 유행했는데 그 중에서 이지심이 잘 지었고, 특히 이규보도 21수나 되는 많은 회문시를 지었다. 정몽주도 회문시에 가세했던 것 같다. 여러 무리 중에 요동의 나그네 있을까 염려되는데, 나루터 어디인지 길가는 사람에게 매양 묻네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征婦怨(정부원) / 포은 정몽주

회문시 짜니 비단 위의 글자 새롭고

적어서 멀리 보내니 원망할 곳 없구나

나그네 염려가 되는데 나루터 길을 묻네.

織罷回文錦字新   題封寄遠恨無因

직파회문금자신   제봉기원한무인

衆中恐有遼東客   每向津頭問路人

중중공유료동객   매향진두문로인

회문시 짜니 비단 위의 글자들은 새롭기만 하네(征婦怨)로 제목을 붙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회문시 짜니 비단 위의 글자들은 새롭기만 하네 / 적어서 봉해 멀리 보내니 원망할 곳도 없구나 // 무리 중에 요동의 나그네 있을까 염려되는데 / 나루터 어디인지 길가는 사람에게 매양 묻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전쟁에 나간 병사의 아내 원망]으로 번역된다. 남자가 여성의 입장이라는 화자로 돌아가 시문을 음영했던 경우가 상당히 있다. 남성 시인이었던 포은의 [정부사] 또한 이런데 착상을 얻어 음영했던 시다. 전쟁터에 남편을 보낸 아내의 진정한 원망의 소리를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담아 나타내려고 했다. 시인은 자기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회문시를 짰던 모양이다. 회문시는 고려시대에 많이 지었던 시형(詩形)으로 앞으로 읽어도 의미가 소통되고, 뒤로 읽어도 의미의 문장이 되는 시상이다. 이런 시를 비단 위해 빼곡이 짜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에게 보냈지만 아무 데도 원망할 곳도 없다고 한탄하는 시상을 만난다. 그래서 화자는 나루터에서 내리는 여러 사람 중에 혹시라도 요동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겠다는 깊은 상념에 빠지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본다. 그래서 비단에 회문시를 짰던 화자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나루터가 어디인지 길가는 사람에게 매양 묻는다는 시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정든 임이 오셨는데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했던 한국여성의 전형도 엿보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회문시 짜니 새롭네 멀리 보내 원망 없고, 요동 가는 사람 있나 나루터에 매양 묻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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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로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절신이었다. 수찬·위위시승을 지냈으며,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한방신의 종사관으로 여진족 토벌에 참가하였고, 1364년 전보도감판관이 되었다. 이후 전농시승·예조정랑 겸 성균박사·성균사예를 지냈다.

【한자와 어구】

織罷: 짜다. 回文: 회문시. 시를 거꾸로 읽음. 錦字: 비단 위 글자. 新: 새롭다. 題封: 적어서 봉하다. 寄遠: 멀리 보내다. 恨無因: 원망하지 못하다. // 衆中: 무리 가운데. 恐有: 있을까 모르겠다. 遼東客: 요동에서 오신 손님. 每向: 매번 향하다. 津頭: 나룻터. 問路人: 길가는 사람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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