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홍선배께 드리는 고언
김태홍선배께 드리는 고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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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김태홍 선배께서 막 국회의원이 되셨을 때, 저는 전국언론노련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김선배께서 언론노련 사무실에 인사 오셨던 날. 우리는 당선축하를 위해, 인사동 술집골목 굽이굽이를 다음날 새벽까지 누볐습니다. 언론노련 최문순 위원장, 언개연의 김영호 위원장 등이 그 날 축배를 함께 들었던 선배들이지요. 우리나라 민주언론운동을 이끌어 온 선배께서 국회에 들어가게 된 것을 마음 풀어놓고 축하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돌이켜 보면 선배는 80년 4월, 계엄치하에서 한국기자협회장이 되었습니다.
언론자유실천운동을 주도하셨고, 그로 인해 옥고를 치렀습니다. 1984년 선배는 우리나라 민주언론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신 동아투위, 조선투위 선배들과 함께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민주언론운동의 역량을 하나로 묶은 역사적 사건이었지요.

1986년, 전두환 군사독재 아래, 온 언론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입니다. 당시 '말'지의 책임자였던 선배는 한국일보 김주언기자가 제공한 보도지침을 말지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감행합니다. 고문이 횡행하던 시절. 단순한 옥살이만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결단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선배는 보도지침 폭로를 통해 그 엄혹한 시절에도 '진실'을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진실'은 언론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이며 가슴에 담아 둔 꽃입니다. 저는 오늘 민주언론운동의 대선배이신 김태홍의원께 평생의 신조로 여기고 살아 왔을 '진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선배께서는 광주의 젊은 언론인들에게 소위 '광주시장 후보 금품반환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이야기가 하나의 '사실'로 자리매김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선배는 그것이 '술자리의 실수'였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술에 취해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냈다는 게 선배께서 내놓은 답변입니다.
그러나 선배도 아시지요. 광주시민들이 선배의 변명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선배의 주장대로 그것이 지어 낸 말이라면, 그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을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이정일 후보를 교체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일국(一國)의 국회의원이 그런 엄청난 얘기를 아무 이유없이 지어냈다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5월 29일,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의 기자회견장에서 선배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자리에 선배의 말을 믿는 후배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선배를 비웃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 기자회견의 맨 앞자리에 앉아, 존경받던 언론운동가의 궁색한 모습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답답함을 털어 내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글을 씁니다.

김선배, 아시지요. 미국 대통령 닉슨이 사임한 것이 '거짓말' 때문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였던 이정일씨도 거짓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교체'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어쩌면 김선배께서도 지금 그 위험한 게임판에 발을 올려 놓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대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감옥행을 각오했던 분이, 지금 거짓말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뇌물을 건네 준 자에 대한 예의입니까? 아니면 비슷한 돈을 받고도 돌려 주지 않았을 지 모를 동료의원들에 대한 의리입니까?

다시 한 번 16년 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당시 말로만 떠돌던 보도지침은 선배의 결단으로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그 날처럼 오늘 정치권의 검은 거래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그럼으로써 진정한 정치개혁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평생 언론운동가로 살아 오신 선배께, 지금 이 시대가 보내는 요구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역사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 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씩 갖게 되는 것도 축복이지 않겠습니까?

머지 않은 시간에 선배의 결단을 다시 존경하며 올리는 축배를 함께 들고 싶습니다. 그 때라면 기억조차 희미할 후배가 무례하게 올린 글에 대한 책망도 기꺼이 듣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진실과 정의, 그리고 바른 정치를 위해서 할 일 많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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