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개구리 울음소리
한여름 밤 개구리 울음소리
  • 문틈 시인
  • 승인 2020.07.07 0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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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흘 비가 내리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개천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자글자글하다. 그동안 어디에 있다가 일제히 나타나 저렇게 마구 울어쌓는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서로 뒤섞여 합창으로 질러대는 소리는 마치 이 세상이 여실히 살아 있다며 수대로 외치는 것만 같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개구리를 볼 수 없는 터에 어느 가까운 시골마을에서 원정이라도 온 개구리일까 싶다. 목이 쉬어라 쉬지 않고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잠도 잊고 밤이 깊도록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기억이 맞는다면 어릴 적 논에서 울던 개구리들은 논둑을 지나가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소리를 일제히 멈추었다가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경쟁이라도 하듯 울어댔다. 시멘트 상자곽 같은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아득히 먼 고향 마을과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개구리들은 여름철의 귀한 초대 손님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없는 여름은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도시인들 대부분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잊거나 듣지 못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 일쑤다. 그것을 놓고 불행하다고까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참 안됐다는 생각은 든다.

작달비가 오고 그 빗소리 속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대고 잠자리에 누워 그 소리들을 듣는 것은 내게는 행복 리스트에 올라 있는 상위 항목이다.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 마음을 흔든다.

처음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나는 변두리의 새로 생긴 작은 아파트 단지에 입주해 살았는데 입주 첫날 밤 단지 안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반가워서 창문을 열고 어디쯤에서 우는지 귀를 밖에 대이고 있었다. 아직 입주가 다 되지 않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개구리는 울고 있었다.

옛날의 그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흡사 날더러 고향을 잊지 말라고 부러 찾아와 우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실인즉 그 단지는 도시 외곽의 논을 없애고 그 자리에다 아파트를 지은 탓에 개구리는 어쩌면 내 땅을 내놓으라고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천이 고향인 소설가 김승옥은 그의 작품 <무진기행>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논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여름 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소리 같다고 한 젊은 감수성이 번뜩인다. 어쨌거나 개구리 울음소리는 자연이 내게 무어라고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무엇일까. 나는 밤으로 울어쌓는 개구리 울음소리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이런 답이 없는 생각들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개구리는 내가 잠이 든 뒤에도 그치지 않고 울어댔을 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아침 산책을 나가는 길에 우연히 12층에 사는 분하고 마주쳤다. 간 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황소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잤다”며 관리사무소측에 연락을 해서 잡아달라고 했는데 직원들이 나와서 찾았으나 못잡았다고 했다. 나는 대경실색하고 말문을 닫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정이 넘어서 황소개구리 한 마리가 항아리 깨지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르는 통에 미칠 뻔했다고 한다.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를 언젠가 들은 일이 있다. 무지하게 큰 소리로 운다. 마치 고성능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는 듯한 높은 데시벨로 운다.

그렇다고 여름 장맛비를 맞아 찾아온 손님 같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그렇게 마뜩찮게 생각하다니. ‘한여름의 손님이 왔구나!’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을까.

자연의 모든 소리들은 지구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이 지구의 박동에 조화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폭포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뿐만 아니라 개구리 울음소리도 그러하다. 일부러라도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마음이 드맑게 정화되는 것을 느낄 터이다. 아닌 말로 마음속에 찬란한 별들이 빛나는 것 같기도 하고.

설령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라고 해도 자연이 내는 소리에 불평할 것까지는 없으리라. 오늘 밤은 비가 멎은 후라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못 들을 것 같다.(참, 비가 올 때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이유는 암컷을 부르기 위해 목 터지게 소리를 내려면 수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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