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이 정치야망 내려놔야 시민사회 살아
시민운동이 정치야망 내려놔야 시민사회 살아
  •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6.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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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출처 : 시민의소리(http://www.siminsori.com)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한국만큼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는 별로 없다. 해방과 전쟁, 혁명과 쿠데타, 5월 광주와 6월 항쟁, 분단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애로에 이르기까지 넘치는 걱정거리들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그렇게 단련했을 터다. 그 와중에 시민사회가 어렵게 뿌리내리고 사회변혁의 터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겐 그야말로 감춰진 축복이다.

관료‧군‧재벌을 앞세운 정부가 산업화에 매달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이 시민단체는 외면됐던 인권, 환경, 복지, 역사왜곡 등 문제군(群)을 끌어안았다.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개발연대 만연했던 관 주도 재벌 위주의 경제운용, 군대식 권위주의체제 전반에 제동을 걸었다. 마침내 정부도 1987년 이후엔 시민운동에 귀 기울이게 됐고, 적잖은 시민단체가 정부와 손발을 맞췄다.

문제는 언제부턴가 시민단체가 민간 자율기구에서 정부 정책의 하부조직처럼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덩달아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이 정치 등용문으로 변질되고 있다. 일부 시민운동 활동가들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노골적으로 꿈꾼다. 정당들도 시민단체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를 물색하는 것을 하나의 관행처럼 보고 있다.

사회학자 히다카 로쿠로(1917~2018)는 일본 시민운동의 특징을 무당무파(無黨無派), 정치적 야심 없음, 전업활동가 없음, 상부지시 없음(횡적 연대), 즉 ‘4무(無)’로 요약했다. 일본 정계에 시민운동 출신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러한 배경 탓이다. 일본 시민단체가 70년대 들어 혁신정당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주로 지역현안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장 선출운동에 불과했다.

4무의 일본 시민운동에 비하면 한국 시민운동은 지나치리만큼 4유(有)의 모습이다. 즉 유당유파(有黨有派), 정치적 야심 넘침, 전업활동가 중심, 상부지시 있음(위계구조 강함). 일본의 지역중심 풀뿌리 시민운동은 일관성과 지속성이 강점이지만 역량은 미약하다. 그렇다고 일사불란한 중앙조직 중심의 한국형 시민운동의 활력 넘치는 정치지향성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시민운동의 정치지향은 지지하는 정당‧정부와의 유착으로 쉽게 이어진다. 시민운동이 정부 비판, 정책 감시, 공익 추구 등 본래의 기능을 잃으면 정부정책 실패와 시민운동의 동반 몰락을 피하기 어렵다. 과거의 관료주의도 문제였지만 비판 없는 정책의 쏠림현상은 국가의 총체적 난국을 예고할 뿐이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다시 서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로 불거진 ‘정대협‧정의연 사태’도 따지고 보면 시민단체의 과도한 정치지향성이 빚어낸 것이다. 윤미향 이전에도 정대협 출신 국회의원은 세 명이나 있다. 정대협 출신 선배들이 이미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상황에서 그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을 테고, 그를 끌어들인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도 관행적인 공천에 불과하다고 봤을 터다.

분명한 것은 윤미향의 국회 진출이 그의 정대협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선배 정대협 출신들이 정계에 진출해 위안부 문제해결에 성과를 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이용수 할머니가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그 대목일 것이다. 과거의 관행이 우리를 천박하게 만들고 있는데도 계속 따르는 것은 머잖아 다가올 사회 전체의 참담함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정치인 배출구조에 분명 문제가 있다. 일본 국회가 세습의원이 많은 것으로 종종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지방의회에 진출한 이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국회에 진출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평가돼야 한다. 현재 중의원 의원 465명 중 147명이 지방의회 의원 출신이다. 세 명 중 한 명 꼴로 바닥부터 다지면서 정치를 해오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운동권 출신, 법조계 및 관료 그룹, 명망가 중심의 정치입문이 대부분이다. 총선 때마다 정당들이 외치는 정치신인 발굴도 말뿐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오래 못 간다. 예컨대 비례대표제도는 전문성을 활용하자는 취지인데도 실제 비례대표 의원들의 행보를 보면 전문성 발휘보다 어쩌다 꿰찬 국회의원 자리를 자신의 정치입문 계기로만 이해하는 모양새다.

20대 국회 비례대표의원 47명 중 지난 4‧15 총선에서 24명이나 재선에 도전해 5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의 재선방법은 사실상 지역구 출마다. 그러자면 4년 의정활동 대부분을 자신의 전문성 발휘보다 지역구 경쟁, 공천 확보 등 당내 정치에 쏟아야 한다. 시민단체 출신의 비례대표의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비례대표의 전문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 배출구조 개혁은 절실한 문제이나 이 글에서는 일단 접어두자. 당장은 시민운동의 정치지향 문제부터 따져보는 게 먼저다. 시민사회가 건강하려면 시민운동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선의의 비판‧감시와 공익 추구에만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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