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8) 우하(雨荷)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8) 우하(雨荷)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6.2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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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동안이나 그런 어리석은 일 비웃고 있다오

연뿌리 연잎을 연대 등으로 불리지만 이를 통칭하여 [연蓮]으로 쓰인다. 그렇지만 유독 연꽃만은 [하荷]라고 하여 연꽃에 대한 다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연하, 봄비에 푹신하게 젖은 연하, 그리고 저녁놀을 보면서 다소곳이 눈을 지그시 감은 연하는 사랑하다 못해 정겨움을 느낀다. 비온 뒤의 연하를 보면서 어찌 하여 푸른 옥을 말(斗)로 만들어서 종일토록 밝은 구슬이 되고 있는지 그 뜻을 모르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雨荷(우하) / 졸옹 최해

산초가루 팔백 섬을 쌓아서 놓았는데

천년세월 어리석음 웃음에 비웃고서

그래도 옥을 만들어 구슬 되고 있는지.

貯椒八百斛    千載笑其愚

저초팔백곡    천재소기우

如何綠玉斗    竟日量明珠

여하록옥두    경일량명주

천년동안이나 그런 어리석은 일 비웃고 있다오(雨荷)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졸옹(拙翁) 최해(崔瀣:1287~1340)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후추를 팔백 섬이나 쌓아놓은 것을 보고는 / 천년동안이나 했던 그런 어리석은 일을 비웃었네 // 그런데 어찌하여 푸른 옥을 말(斗)로 만들어서 / 종일토록 밝은 구슬이 되고 있는지 그 뜻을 모르겠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봄비 앞에 놓인 연꽃]으로 번역된다. 푸른 옥이라고 한다. 너무 밝고 투명하다 보면 흔히 푸르다고 한다. 다만 물도 너무 맑다 보면 푸른색을 띠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보면 푸른색도 띤다. 이런 점을 원용하듯이 창고에 곡식이 많다 보면 비축이 된다는 점을 원용하고 있다. 당나라 원재元載는 대종 때 재상을 지낸 인물로 그가 죽은 뒤 창고를 뒤져보니 후추가 800곡이나 나와 나라에서 몰수했다는 고사를 인용하고 있다. 시인은 흉년이 들어 매점매석과 같은 행위 속에 후추를 많이 쌓아 놓는 일을 빗댄다. 어리석은 후추의 비축을 비웃는다고 했다. 연잎에 모인 물방울이 구슬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원재의 탐욕과 비교해서 시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비유한 내용의 이면裏面을 보면 비유법의 달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는 그런대도 어찌 하여 푸른 옥을 말(斗)로 만들어, 종일토록 밝은 구슬 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무수한 빗방울이 연잎 위에 떨어진다. 한 참 모였다가 연잎이 묵직해지면 꽃잎이 기우뚱하며 연못 위로 말 구슬이 되어 떨어진 점까지도 빗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후추 팔백 섬 쌓아서 어리석은 일 비웃네, 푸른 옥 말로 만들어 구슬된 지 모르겠군’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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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졸옹(拙翁) 최해(崔瀣:1287∼1340)로 고려 말의 문인이다. 장흥고사에 임명된 뒤 1320년(충숙왕 7) 안축·이연경 등과 함께 원나라의 과거에 응시하였다. 유독 최해만이 급제하여 1321년 요양로개주판관이 되었다가, 5개월 만에 병을 핑계로 하고 귀국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貯 : 쌓다. 椒: 산초, 후추. 八百斛: 팔백 섬(斛-10말). 곧 8천말. 千載: 천 년. 笑: 비웃다. 其愚: 그 어리식음. 곧 곡식을 많이 쌓아두는 일을 뜻함. // 如: 그런대로. 이와 같다면. 何: 어찌하여 綠玉: 푸른 옥. 푸른 구슬. 斗: 말. 竟日: 종일. 量: 헤아리다. 明珠: 밝은 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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