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향기
여름의 향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0.06.1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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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한여름으로 치닫는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날들이다. 나는 아침 7시 무렵에 일찍 나가 천변을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돌아온다. 태양이 아직 달구어지지 않아 선선한 느낌이다. 복동이와 함께 한다.

이 시간대에는 거의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없다. 마스크를 벗고 자유한 몸으로 걷는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복동이의 목줄도 풀어준다. 개천에는 돌덩이로 이어놓은 징검다리가 있다. 복동이는 물에 빠지지 않고 용케도 돌들 사이를 껑충 뛰어 잘 따라온다.

내가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개천 건너편으로 가서 인도의 끝까지 가는 길이다. 길의 양 옆에는 풀숲이 우거져 있다. 금계국, 개망초, 클로버, 쇠뜨기, 애기똥풀, 그리고 야생화들, 온갖 풀들이 함부로 자라나 진한 풀 내음새를 발한다.

꽃향기처럼 향기롭지는 않지만 풀향이라고 할 그런 풋풋한 내음이다. 나는 이 풀들이 모여 뿜는 내음을 여름의 향기라고 이름한다.

길은 시멘트로 덮어 놓아서 맨 땅을 걷는 부드러운 기분은 안 나지만 혼자서 큰 소리로 예전 학창시절에 배운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도 부르고 여유를 부리며 발걸음을 움직인다. 길 끝에 당도하면 작은 공원으로 단장한 넓은 터가 있다. 군데군데 자연석 돌비를 세우고 옛 시인의 시를 새겨놓았다.

‘짓는 것이 한숨이오 지는 것이 눈물이라/인생은 유한한데 시름은 그지없다’는 구절도 이 돌비에서 읽었다. 옛시인이 살던 시절도 시름이 한가득했던가 싶다. 시름을 모르는 것은 풀숲에서 숨바꼭질하는 새들, 그리고 키대로 자란 풀들, 야생화 같은 것들이다.

나를 자연의 일부로, 저 풀 한 포기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금세 마음이 평안해진다. 만일 여기서 생각을 더 끌고 가서 사람은 왜 사느냐고 묻는다든지 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것은 아무도 대답할 수가 없다. 삶이란 무조건 사는 것, 즉 맹목이다. 삶에는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시인은 인생은 유한하다고 한탄한다. 유한한 인생에 무슨 목적이 따로 있을 손가. 여름을 무성하게 하는 저 풀들은 시절대로 살다가 시절대로 사라진다. 한숨과 눈물로 사는 한 세상, 시름은 어쩔 수 없는 행로인 것 같다.

내가 천변에서 가장 아끼는 풍경은 개천 양 옆의 녹지대에 함부로 우거진 풀숲. 사람이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 때 풀숲이 얼마나 진한 생명력으로 무성해지는지 알려준다. 사람들은 이름도 알지 못하고 뭉뚱그려 잡초라고들 부른다.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풀은 장미만큼이나 귀한 것들이다.

풀숲에서는 참새, 뱁새, 나비, 벌 들이 가는 풀대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며 놀고 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는 마치도 자연의 은총을 체험하라고 채근하는 것 같다. 삶에는 목적이 없지만 대신 신의 은총을 체험하는 길은 열려 있다. 지금 나는 그 은총을 듬뿍 받는 느낌이다. 여름의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좋은 시간 개천 길을 나더러 혼자 독차지하라고 놔둘 리가 없다. 드물게 자전거를 타고 건각을 자랑하는 젊은이가 휙, 자전거 바퀴를 굴려 달려간다. 아침 운동을 나온 모양이다. 그리고, 거의 날마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머릿수건을 하고 그 시간대에 개천길을 천천히 걷는 모습을 마주한다.

지팡이도 없이 할머니는 잘도 걷는다. 아마 자식들이 날마다 걸어야 오래 사신다고 말했던 것이리라.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천변 길을 걷기로 작정한 듯하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를 응원한다.

사람은 걸어야 한다. 두 다리의 생김새부터가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없거나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시간대나 장소를 찾는 일이 어렵다는 것. 생각해보면 한사코 사람을 피해 걷는다는 것이 밉살스러운 일 같기도 하다. 어쩌랴, 역병이 도는 시절이 수상하여 그런 것을.

칸트는 시계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점심 후 매일 오후 3시 30분에는 어김없이 산책에 나섰다. 동네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딱 한번 루소의 책을 읽다가 깜빡 시간을 어겼다. 아마도 걸으면서 사색을 했을 터이다.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칸트가 걷던 ‘철학자의 길’을 보존해 놓았다. 나도 밤송이가 땅에 떨어져 있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잠시 칸트를 그리워한 일이 있다.

루소는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산 자여, 걸으라. 오늘도 내일도 걸으라. 이 천변 길에도 훗날 어느 위대한 영혼이 산책하게 될 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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