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무사히
  • 문틈
  • 승인 2020.06.10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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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코로나

 

요즘은 버스 안에 흔히 붙어 있던 이런 글을 거의 보지 못한다. 예전엔 흔히 버스 운전석 위에 어린 소녀가 촛불을 켜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그림에 ‘오늘도 무사히’라는 구절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운전을 하도록 도와주소서’ 하는 소원을 담아 부적처럼 그렇게 붙여놓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교통사고가 지금보다 더 잦았던 것 같다. 운전을 잘 못하거나 운 나쁘게 다른 차가 와서 부딪히는 일이 생기면 자칫 운전수는 물론이고 승객들도 다치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한 날을 운전수는 재수 옴 붙은 날로 여긴다. 그러니 기도하는 그림을 걸어놓고 운 좋은 날이기를 바라는 것일 터이다. 소박하지만 절실한 바람이다. 버스나 택시, 승용차, 트럭 다 ‘오늘도 무사히’ 지내는 것이 그날그날의 바람일 테니까.

나는 이 생전 한 번도 운전해본 일이 없다. 아예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았다.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에 나까지 끼어들어 교통 혼잡을 더하고, 거기다가 무사히 차를 끌고 다닌다는 것에 영 자신이 없어서 운전면허 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아내가 운전을 하게 되어 결국 나의 교통 혼잡 운운하는 말은 허언이 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엔 차량이 모두 2,400만대쯤 된다는데 그 많은 차들이 도로를 꽉 메우고, 배기가스를 뿜어대고, 소음을 쏟아내고, 그래서 나는 솔직히 차가 싫다. 그렇다고 차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으니 내게는 필요악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한번은 아내가 차를 몰고 내가 동승한 채 외출 중에 시내버스가 우리 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버스 기사도 이 사실을 알고 달리던 버스를 멈추고 내려와 스친 부분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차를 새로 장만한 지 얼마 안된 터라 긁힌 자국에 과도하게 신경이 쓰였다.

버스 기사와 우리는 가까운 파출소를 찾아가 해결을 모색했다. 경찰은 당사자들끼리 타협을 보라고 했다. 버스 기사가 말했다.

“제가 잘못 운전한 것 인정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버스를 시운전한 날이어서 길이 익숙지 않아 이리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버스 기사는 “이 사실을 알면 회사가 저를 고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며 점점 우리가 측은한 느낌을 자아내게끔 말을 했다. 우리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잘못했으면 배상을 하던가, 고쳐주던가 해야지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버스는 서 있고, 대화는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버스 기사가 우리가 꼼짝 못할 결정적인 말을 했다.

“선생 분들은 먹고 사실만한 것 같은데 한번 봐주십시오.”

먹고 살만한 분들인 것 같은데 그만 봐달라는 노골적인 말을 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주변머리 없는 우리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과는 그냥 우리가 손해 보는 걸로 하기로 아내와 눈길을 주고받고 돌아섰다. 그 후로 ‘먹고 살만한 분들’이라는 말이 몇 십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무사히’는 신참 버스 기사에게만 간절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 버스가 아주 조금만 방향을 우리 쪽으로 튼 채 달렸다면 우리는 크게 변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만한 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오늘도 무사히’를 경험한 셈이다.

어디 차를 운전하는 기사뿐이겠는가. 길 가다가 간판이 떨어져 중상을 입기도 하는 세상에 오늘도 무사히는 모든 이 땅의 사람들에게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 목숨을 노리고 돌아다니는 엄중한 시기에는 그 말이 아주 간절하게 다가온다.

요즘 수도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대폭발은 무시무시하다. 나 같은 겁 많은 사람은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교회, 탁구장, 쉼터, 병원, 식당, 놀이동산, 돌잔치….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서 누군지 모를 감염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감염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사람이 걸리면 온 가족이 다 걸리는 일도 흔하다. 나이 팔십이 넘은 사람들도 있다.

간혹 안부 인사를 한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지인들이 있다. 오랜만에 소식이 궁금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잘 지내느냐는 안부 인사가 코로나 안 걸리고 잘 지내느냐는 인사로 들린다. 나도 지인의 안부가 궁금할 때 전화해서 코로나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코로나를 어찌 알고 조심한다는 말인가. 정담을 나누고도 허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친구여,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를 바란다. 이것은 순전히 운발이 좋기를 바란다는 말에 다름이 없지만 그래도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아 무사히 지낼지 누가 알겠는가. 코로나 공포에서 해방될 날을 ‘오늘도 무사히’ 소원을 품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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