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0.06.08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카렐 다리

2019년 12월 19일 오전, 체코 프라하 성에 있는 성 비트 대성당과 대통령궁을 구경하고 나서 구시가지까지 걸었다. 카렐 다리를 건너면서 순교한 사제 네포무스키 동상을 보았다.

카렐 다리
카렐 다리

바츨라프 4세(카렐 4세의 아들)는 왕비 소피아의 정조를 의심하여 네포무스키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고 명령했다. 네포무스키는 이를 거부한 탓에 죽임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블타바 강물에 버려졌는데 카렐 4세(1316∼1378)가 착공하여 건설 중인 카렐 다리 옆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다리는 건설 도중 여러 번 무너져 내렸고, 1402년에야 완공되었다.

▷ 시민회관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 화약탑 앞에서 선택관광 하는 일행을 기다렸다. 1475년에 세워진 성문 탑은 1757년부터 화약고로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동대문이다. 근처에서 앤틱 카를 보았다. 너무 멋지다.

화약고와 앤틱 카
화약고와 앤틱 카

화약탑 옆 큰 도로에 시민회관이 있다. 시민회관은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로 정면 꼭대기의 반원형 곡면 벽면은 모자이크 그림 <프라하에 바치는 경의>로 장식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왕궁이었지만 왕들이 프라하 성으로 이사 간 후, 17세기 후반 대화재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1903년부터 체코의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건물을 재건하여 1912년에 완성했다. 1918년엔 이곳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민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시민회관
시민회관

특히 시민회관은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 개막 장소로 유명하다.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50주년에 맞추어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라파엘 쿠벨리크(1914~1996)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축제는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에도 개최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음악축제는 체코의 민족 음악가 스메타나(1824~1884) 서거일인 5월12일에 시민회관 스메타나 홀에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의 연주로 개막한다.

60분 정도 연주되는 「나의 조국」은 체코 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가득 찬 6곡의 연작 교향시로, 제1곡 ‘비세흐라드’, 제2곡 ‘블타바’(독일어로 ‘몰다우’), 제3곡 ‘사르카’, 제4곡 ‘보헤미아의 목장과 숲’, 제5과 제6곡은 ‘타보르’와 ‘블라니크’이다.

유튜브에서 「나의 조국」을 듣는다. 장엄하게 시작되는 첫 곡 ‘비세흐라드’는 블타바 강 상류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언덕의 고성(古城)을 배경으로 민족의 전설을 회상하는 곡이다.

‘몰다우’로 더 잘 알려진 제2곡 ‘블타바’는 프라하를 관통하는 강으로 보헤미아 영욕(榮辱)의 역사와 함께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제3곡 ‘샤르카’는 체코를 구한 여전사 샤르카 이야기이다. 마치 이스라엘의 유디트나 프랑스의 잔 다르크와 비슷하다.

제4곡 ‘보헤미아의 목장과 숲’에서는 목가적이고 친숙한 선율로 체코의 풍광을 묘사하고 있다. 제5곡과 제6곡 ‘타보르’와 ‘블라니크’는 연속된 내용으로, 후스파 교도들의 종교전쟁 장면과 블라니크 산기슭에서 잠들어 있던 용사들이 다시 일어나 조국 보헤미아를 위해 싸우는 장면이다.

스메타나는 「나의 조국」을 이렇게 끝맺는다.

“이 선율의 바탕에는 체코 민족의 부활, 미래의 행복과 영광이 도사리고 있다”

스메타나는 시골의 맥주 양조업 집안에서 17녀 1남 중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났다. 1848년의 오스트리아 혁명 여파로 오스트리아의 속국 프라하에도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24세의 청년 스메타나도 이 운동에 가담하였는데 독립은 실패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가혹한 탄압이 시작되자 1856년에 그는 스웨덴으로 건너가 5년간 지휘자, 피아니스트로서 지냈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되살아났고, 그도 귀국하여 민족 음악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8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가극장(假劇場)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스메타나가 「나의 조국」을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50세인 1874년이었다. 그런데 그는 귀에 이상이 생겨 제1곡 ‘바세흐라트’에 이어 제2곡 ‘블타바’를 작곡할 무렵에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럼에도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작곡을 계속하여 1879년에 제6곡을 완성했다.

이후 그는 청력 상실에 정신착란증까지 겹쳐 1884년 5월12일에 프라하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했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