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3) 국자감직려문채진봉학려(國子監直廬聞採眞峰鶴唳)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3) 국자감직려문채진봉학려(國子監直廬聞採眞峰鶴唳)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5.18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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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깃든 한 마리 학이 깨끗함을 겨워하네

우리 선현들은 자연을 보면서 많은 시를 음영했다. 자연이 시요, 시가 자연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때문이다. 그래서 선경우정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시상을 일으킬 때 먼저는 자연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 음영하고, 다음은 자연에서 보았던 생각이나 강한 느낌을 글로 표기하는 것이 대체적인 시상이었다. 소나무에 깃든 학과 산에 가득한 원숭이와 새들 중에 자기를 이해한 벗이 없어서 성긴 깃을 애써 문지르며 한밤을 운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國子監直廬聞採眞峰鶴唳(국자감직려문채진봉학려) / 동산수 최자

구름이 지나가니 하늘에는 달 밝은데

소나무 깃든 학이 깨끗함을 겨워하고

새들은 벗이 없어서 한밤중에 울어대네.

雲掃長空月正明   松巢獨鶴不勝淸

운소장공월정명   송소독학불승청

滿山猿鳥知音少   刷盡疎翎半夜鳴

만산원조지음소   쇄진소령반야명

소나무에 깃든 한 마리 학이 깨끗함을 겨워하네(國子監直廬聞採眞峰鶴唳)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동산수(東山叟) 최자(崔滋:1188~1260)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끝없는 하늘 구름 걷히고 달은 정녕 밝은데 / 솔 둥지에 자던 학은 청아함 이기지 못하네 // 온 산에 잔나비와 새들은 그 소리를 알리 없건만 / 홀로 성긴 날개 퍼덕이며 한 밤중에 운다]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국자감직려에서 최진봉 학의 울음을 들으며]로 번역된다. 시인이 국자감학유國子監學諭 때 문재를 인정받아 문한文翰을 맡았음을 생각할 때 시적인 배경을 돕는다. 최진봉에서 학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시상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청아한 학의 소리를 다른 새들이 알 수 없건만 누구라도 들었으면 하는 고아한 뜻을 담았음을 은근하게 담아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시인은 구름에 언뜻 언뜻 보이는 사이를 뚫고 비친 달빛을 받아 소나무 가지 끝에 깃든 학의 울음이 깨끗함을 겨워한다는 뜻을 담았다. 그래서 구름 쓸려가니 먼 하늘에 바야흐로 달이 밝기만 한데, 소나무에 깃든 학의 청아함 이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깨끗한 학의 터럭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울음소리까지도 맑았으니 그 소리를 듣고 일구어 낸 시인의 시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화자는 온 산에 같이 잠들어 있거나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다른 짐승들이 차마 알 수야 없지만 누가 듣던 말던 성긴 날개를 퍼득인다고 했다. 산에 가득한 원숭이와 새들 중에 자기를 이해하는 벗이 없어, 성긴 깃을 애써 문지르며 한밤을 울었기 때문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하늘 구름 달은 밝고 둥지 학을 청하하네, 잔나비와 새가 몰라 성긴 날개 퍼덕이군’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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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동산수(東山叟) 최자(崔滋:1188~1260)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1212년(강종 1) 급제, 상주사록이 되었는데 치적이 우수하여 벼슬은 국자감 학유에 이르렀다. 여러 벼슬을 거쳐 중서문하평장사를 지냈는데, 시문으로 이름이 매우 높았다. 저서로는 <보한집>이 전하며 시호는 문청(文清)이다.

【한자와 어구】

採眞峰: 산봉우리 이름. 雲掃: 구름을 쓸다. 長空: 먼 하늘, 月正明: 달이 밝다. 松巢: 소나무 둥지. 獨鶴: 한 마리 학. 不勝淸: 깨끗함을 겨워하다. // 滿山: 산이 가득하다. 猿鳥: 원숭이와 새. 知音: 나를 이해하다. 少: 조금은, 刷盡: 문지르다. 疎翎: 성긴 깃. 半夜鳴: 한 밤 중에 울다. 밤의 절반인 ‘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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