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홍어’가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로 대접 받길
전라도 ‘홍어’가 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로 대접 받길
  • 구재중 기자
  • 승인 2020.05.1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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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중 기자
구재중 지역사회부장

예로부터 전라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걸 들라면 홍어를 꼽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잔치가 열리는 날이면 식탁에는 홍어가 오르곤 했다. 머슴께나 부리는 부잣집은 중요한 행사 땐 의례적으로 홍어를 내놓는다. 아무리 먹을 게 많아도 홍어가 없다면 전라도 말로 ‘걸게’ 먹었다는 얘기를 하지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홍어를 올려놔야, “장만을 잘했더라”는 칭찬을 듣기 때문이다.
고유의 전통풍습이 그랬다는 얘기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필자가 사는 동네 잔칫날엔 홍어를 채 썰어 미나리를 섞어 초고추장에 무쳐 내놓았다.
다른 방법으로 홍어를 발효시켜 초고추장이나 양념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이 경우 전라도 말로, 삭혔기 때문에 홍어를 처음 먹어본 사람은 입에 넣기도 전에 냄새에 질려 코를 막는다. 한 번 맛을 들이고 나면 홍어회만 찾을 정도로 그 맛은 짜릿한데도 말이다.

홍어는 신안 흑산도에서 잡은 것을 제일로 친다. 삭힌 홍어는 목포나 영산포가 유명하다. 과거에는 흑산도 홍어 한 마리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업기술 발달로 홍어가 제법 나온다. 홍어를 즐겨먹는 서민들은 칠레산 홍어를 사먹기도 한다. 한 번 맛들이면 또 다시 찾는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식가들은 홍어회를 맛있는 부위별로 순서를 매기기도 한다. 단연코 반질반질하고 끈적끈적한 코를 으뜸으로 친다.

점잖은 자리에서는 꼬들꼬들한 홍어 살점을 그대로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다. 그렇지 않으면 한입에 먹기 좋도록 ‘삼합’형태로 먹는다. 삶은 돼지고기에 숙성된 묵은지에 막걸리를 곁들인다. 말하자면 미스터트롯에서 2등으로 뽑힌 영탁이가 불렀던 ‘막걸리 한잔’을 마시면서 ‘삼합’을 안주로 삼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없으리라.

이런 환경에서 자랐던 전라도인은 자신들이 즐겼던 홍어가 관절에 좋다. 최근 과학적인 연구결과가 나오자 고무된 분위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앤드루 길리스 교수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서다.
홍어(Leucoraja erinacea)는 인간과 달리 평생 연골이 자라나고, 연골이 손상되면 고쳐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게 핵심 키워드다.
여기에 연골 상처가 아물면 흉터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길리스 교수는 “홍어가 연골을 만드는 유전자가 인간과 상당 부분 같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사실은 홍어가 다 자라서도 연골을 만들 수 있듯이, 이를 적용하면 인간도 가능하다는데 있다. 연골 재생 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희망적 발견이 농어촌인구가 많은 전남도민들에게 지료제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특히 농부들은 자식공부를 시키기 위해 하루 내 논밭에 쪼그려 앉아 일을 하다보니 농부병의 하나인 무릎관절염에 시달리기 일쑤다.
그로인해 앉지도 서지도 못하기에 비가 내리려고 하는 날이면 팔다리가 쑤신다고 말하곤 했다.

최근 좌식 생활과 고령화로 관절염 환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환자 수는 7만7318명으로 지난 2015년 대비 39%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공관절 대신 줄기세포로 연골을 재생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주입해 일단 연골로 자라게 할 순 있지만 대부분 분화가 멈추지 않고 계속돼 뼈로 되는 경우가 많아 한계점으로 남아있다.

반면 미국 연구진은 연골을 만드는 홍어 줄기세포는 딱 연골까지만 자라난다는 점에 착안해 관절염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겠다고 나섰다.
줄기세포가 뼈까지 자라지 않고 사람 줄기세포가 연골까지만 자라게 하는 유전자를 발견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있었다.
지난 2018년 미국 뉴욕대 의대 제레미 데이슨 교수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셀’에 “홍어의 보행능력을 제어하는 신경망이 포유류와 같다”고 발표했다.
홍어에는 지느러미가 두 쌍 있는데 한쌍의 커다란 지느러미는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데 쓰고 나머지 작은 지느러미 한쌍이 좌우로 움직이며 바닥을 기는 모습이 마치 인간이 두 다리로 걷는 모습이 마치 사람이 걷는 모습과 닮았다는 점에서다.

이렇게 홍어 얘기를 꺼낸 것은 어릴 적 무심코 먹었던 홍어가 고령화사회를 맞아 팔다리가 쑤셔 고생하는 어르신을 위해 치료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에서다.
이제 무릎관절 줄기세포가 상용화되면 흑산도에서 나는 전라도 홍어가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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