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지키기
어머님 지키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0.05.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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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가 다섯이다. 나와 동생 한 가족만 거리상으로 천리 멀리 떨어져 살고 다른 세 형제들은 서로 멀지 않은 같은 지역에 산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형제들끼리 전화로만 연락할 뿐 만나지 못하고 있다.

구순 넘은 어머니는 세 형제들이 사는 도시에 따로 산다. 문제는 어머니를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지키는 일이다. 형제들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서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 매우 조심스럽다. 혹여 누가 운수 사납게 어느 동선에 섞였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혀 어머니께 옮길지 몰라서다.

만일 형제들 중 누군가가 불행하게도 무증상 감염자가 있다면, 그런 줄 모르고 어머니를 만난다면, 상상만 해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형제들도 어머니도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생필품을 준비해놓고 집안에서만 지내다시피 한다.

“이것이 참 큰일이다. 전 세계가 난리여야. 약이 없다는데 어째야 쓸거나.”

어머니도 몹시 걱정이 되는지 전화에 대고 한숨을 쉰다.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나는 어머니 생각만 해도 조마조마하다. 매일 한 걱정이다. 지금 내 형편에 어머니께 갈 수도 없다. 가봤자 별수 없는 일이지만 가는 중에 코로나균이 묻지 말라는 법이 없다. 가서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으면 좋으련만.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도 자주 뵌 처지는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는 가족끼리도 거리두기 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 어머니는 고도에 떨어진 난파선의 선원같은 처지다.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패닉 상태가 된다.

모르긴 해도 사람들의 왕래가 자유롭지 않은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한 별의별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모진 세파에 온갖 풍상을 겪어온 어머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감당하기 어렵다.

“텔레비도 못 보겄어야. 맨날 무서운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만 나오고. 정말 큰일이다.”

어머니 일생 가운데 지금 이 시기는 겪어보지 못한 힘든 나날들일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에게 다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속도 모르고 어머니께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청을 했다. 그랬더니 “몇날 며칠 나 혼자서 아무도 만나지 말고 여기서 갇혀 지내라는 말이냐?”라고 말하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감옥살이도 아니고 가끔 한번은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정신건강에도 좋다. 막내동생이 1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뵈러 간다. 어머니와 막내동생 간에 은연중 묵계가 된 모양이다. 필요한 것을 사다 드리는 등 막내가 어머니 수문장 노릇을 전담하고 있다.

“막내야, 활동량을 줄이고 극도로 네가 조심해야 쓰겄다. 엄마의 안전이 너한테 달렸다.”

막내는 내 말을 듣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걱정 마쇼. 사무실만 왔다갔다 하니까”라고 아무런 걱정 말라는 말 뿐이다. 정말 무슨 이런 병이 다 생겨나서 사람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코로나 이전에 하루 한 번 바깥 산책을 해왔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집에서 층간소음이 아랫층에 들릴까봐 천으로 손수 만든 덧신을 신고 조심조심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 산책을 대신했다. 이제사 생활방역이 되면서 어머니는 바깥 산책을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 나갈 때는 현관문 손잡이부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일까지 극도로 조심해서 휴지조각을 대고 누른다. 엘리베이터 안에 혹시라도 부유하고 있을지 모를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도 단단히 한다. 어머니 나름대로 방역을 하는 셈이다.

해외 사이트에서 지금 난리가 난 어떤 뉴욕 거주자가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오거나 택배를 받으면 물건 하나하나를 균이 묻은 것처럼 엄청 조심히 취급한다고 한다고 쓴 것을 보았다. 손을 정성스럽게 씻고 나서 사온 식품 포장을 살균 시트로 하나씩 닦아 냉장고에 넣고, 손잡이와 냉장고 문을 소독하고, 그리고 나서 또 다시 손을 씻고 ….

어머니는 가까스로 심시세끼 식사를 한다시지만 뉴욕 거주자처럼 이런 세세한 과정을 해야 한다는 게 어머니에게는 무리일 것 같다. 나는 그저 하늘에 기도밖에 할 일이 없다. 나는 어떤가. 아내는 병원, 마트에도 어쩔 수 없이 들르지만 나는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밖에 나가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총만 안들었제 전쟁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6.25때 인민군의 총구 앞에 선 일도 있다. 지금이 그때만큼이나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들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헤르만 헤세, 나의 어머님께)

이 나라 모든 어머니와 어머니를 지키는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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