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27(오․일․팔․이․칠)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르자
‘5․18-27(오․일․팔․이․칠)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르자
  •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5.04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전 국민일보 편집인)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 //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정태춘 글․곡, ‘5․18’, 1998)

붉은 꽃을 심지 말라는 노랫말은 참담하게도 아직 유효하다.
5월 광주가 40주년을 맞는 지금 진혼가(鎭魂歌)는 여전히 피눈물 섞인 절규로 다가와 귓가에 맴돈다. 금빛 훈장은 억울한 주검 앞으로 여태 소환되지 못했고, 5월의 광주를 못 믿겠다며 능갈치는 이들의 흰소리는 입에 거품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거듭거듭 솟구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도 5․18 망언은 봇물을 이뤘다.
그 무람없는 폭언은 일부 인사들이 지금도 5월 광주를 조롱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광주서구갑에 출마한 주 모씨의 발언은 군던지럽기까지 했다. 그는 광주방송 후보자연설에서 “광주는 80년대에 묶여 있는 도시… 민주화 성지라는 미명 아래 비극을 기리는 제사가 마치 본업처럼 됐다”며 거품을 물었다.

망언 인사들의 낙선은 당연하다.
이미 95년 ‘5․18 특별법’이 제정됐고 이어 97년 대법원이 광주 학살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간부들에 대해 무기징역 등의 판결을 내린 바 있는 사안이 아닌가. 그럼에도 뒷맛은 씁쓸하다. 진상규명은 아직 진행 중이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아서다.

5월 광주의 공식명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런데 이 명칭엔 두 가지 중요한 진실이 빠져 있다. 먼저 ‘5․18’은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가 겪었던 열흘간의 고통과 저항과 연대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예컨대 3․1절이나 8․15광복절은 각각 그날 이후의 지속성을 암묵리에 전제하지만 광주는 그 열흘이 전부다. 열흘에 담긴 내용과 의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또 ‘민주화운동’이란 말로는 신군부의 학살을 읽어낼 수 없다.
사실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명칭도 88년 노태우 정부가 6월 민주항쟁으로 고무된 시민사회의 요구에 떼밀려 신군부의 무력행사는 논외로 한 채 그저 광주시민들을 위무하려는 의도로 포장해 내놓은 안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야당인 평민당도 처음엔 반대했었다.

그렇다면 ‘5․18’ 대신 ‘5․18-27(오일팔이칠)’이, ‘민주화운동’ 대신 ‘학살’ 또는 ‘민중항쟁’이 낫겠다.
다만 5월 광주는 신군부의 학살 끝에 역사 저편으로 밀려난 게 아니라 이후 6월 민주항쟁, 2016년 촛불혁명 등으로 부활해왔다. 이를 감안하면 명칭에 저항의 뜻이 담겨야 맞다. 즉 열흘 동안의 민중연대를 통한 저항, 바로 ‘5․18-27 광주민중항쟁’이다.

‘5․18-27 광주민중항쟁’ 20주년 당시 나는 “5월 광주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요 조국의 몫이다.
때문에 5월을 광주에만 묻어둘 수만은 없다”고 썼다(‘5월을 광주에 묻어두지 말라’,
국민일보 칼럼 세상만사, 2000년 5월 18일자). 왜냐하면 “5월의 뭇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부담으로 부활하여 있을 때 패역의 역사는 비로소 소생의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이제 5월 광주는 지역갈등을 털어 낼 수단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시험장으로 떠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40주년을 맞는 지금은 5월 광주의 바른 이름이 자리매김 됐으면 하는 바람이 먼저다. 그래야 사람들은 5월 광주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터다.
공자는 정치를 맡게 되면 뭘 먼저 하겠냐는 제자의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논어 자로편). 이른바 정명(正名)이다. 바른 이름 붙이기는 정치뿐 아니라 역사기록의 조건이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대량학살로 통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홀로코스트는 번제(燔祭), 즉 속죄 차원에서 자신들을 대신해 흠 없는 동물을 제단 위에서 태워 바치는 의식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종교의식이 아니니 홀로코스트와는 거리가 있다. 홀로코스트란 말이 워낙 유명해졌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대량학살을 쇼아(Shoah)라고 말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대인 학살을 기리는 곳도 ‘쇼아 기념관’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학살기념관을 ‘야드 바셈(Yad Vashem=기억+이름)’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학살된 이들을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40주년 맞은 5월 광주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5월 광주를 지나 살아남은 이들 마음에 응어리진 핏빛 아픔을 모두 드러내 붉은 꽃이라도 여기저기 심을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선은 경계 차원에서라도 ‘5․18-27 광주민중항쟁’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