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0) 모춘(暮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0) 모춘(暮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4.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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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 가득 널린 꽃잎 아까워서 쓸지 못하네

봄을 보내기 아까워 몸부림치는 소리를 듣는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간곡한 기도를 올린다.
돌아오는 내년 봄만큼은 마음껏 즐기리라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여름을 맞이한다.
이럴 때 즈음에는 바람이란 녀석이 시샘이나 하듯이 스치는 빗줄기와 뜻이 맞아 꽃 봉우리를 죄다 떨어뜨리고 만다.
차마 보기 아까운 정경이다.
아이도 그 서글픈 마음을 알고나 있는 것 같아 뜰에 가득 널린 꽃잎 아까워 쓸지를 않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暮春(모춘) / 지재당 강담운

시들어진 꽃잎들은 목숨이 짧은 건가
밤새 불던 바람결에 모두가 가버렸네
아이도 쓸쓸함인가 널린 꽃잎 쓸지 않네.

殘花眞薄命   零落夜來風
잔화진박명   영락야래풍
家僮如解惜   不掃滿庭紅
가동여해석   불소만정홍

뜰에 가득하게 널린 꽃잎이 아까워 쓸지 않네(暮春)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지재당(只在堂) 강담운(姜澹雲)으로 김해출신 기생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들어진 꽃은 수명이 짧았을 것이지만 / 밤새 불던 바람에 모두 져버리고 말았네 // 아이도 그 서글픈 마음을 알고나 있는 것 같아 / 뜰에 가득 널린 꽃잎 아까워 쓸지를 않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늦은 어느 봄에]로 번역된다.
봄이 되면 생명 약동의 시절을 만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갓 피어난 새싹이 쏘옥 올라왔던 솜털 같은 싹의 무더기들이 목을 축이겠다고 ‘저도 제도’ 달라는 아우성치는 모습을 본다. 어서 커서 목련꽃 아씨도 만나고, 백합꽃 할머니 무릎에도 앉고 싶단다.
이와 같은 시상 속에 늦은 저녁을 보낸 시인은 시들은 꽃은 수명이 싱싱한 꽃보다 더 짧다는 안타까움을 부여안는다. 그러면서 바람 탓으로 돌리는 시상의 멋을 부린다. 그래서 시들어진 꽃은 그 수명이 짧으니, 밤새 불던 바람에 모두 져버렸다는 안타까움을 보인다.
분명 바람 탓을 아니겠지만 그렇게 돌리면서 시적인 내면을 들어다 본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어느 저녁의 소묘다.

화자는 아이를 시켜 떨어진 꽃잎을 차마 아까워 손으로 주섬주섬 담거나 비로 쓸지 못한 안쓰러운 모습을 보인다.
심부름꾼 아이도 그 서글픈 마음 아는 것처럼 뜰에 가득 널린 꽃잎 쓸지를 않다고 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또 그렇게 울기만 했었다는 어느 시인의 시상에서 볼 때 너무 아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시들은 꽃 수명 짧아 밤샌 바람 모두 졌네, 아이들도 마음 알아 꽃잎 아까워 쓸지 않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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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재당(只在堂) 강담운(姜澹雲)으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그 녀의 시 작품 [억석]이라는 시에서 과거를 회상하여 자신의 생애에 대하여 소상히 밝히고 있다. ‘배전’의 소실로만 알려질 뿐 생몰연대와 행적은 알 수 없다. 풍경시를 많이 남겼으며 시집 [지재당고]에 45수가 전하고 있다.

【한자와 어구】

殘花: 시들어진 꽃. 眞: 참으로, 진실로. 薄命: 명이 짧다. 가을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딸어짐을 이렇게 표현했음. 零落: 떨어지다. 夜來風: 밤에 바람이 오다(불다). // 家僮: 집 아이. 꼬마 녀석. 如: ~과 같다. 解惜: 애석함을 알다. 不掃: 쓸지 않다. 滿庭: 뜰에 가득하다. 紅: 붉다. 여기선 [꽃잎]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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