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보낸 하루
뉴욕에서 보낸 하루
  • 문틈 시인
  • 승인 2020.04.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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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미국에 갔다. 평생 한 번도 해외 구경을 해보지 못한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미국에 가서 뉴욕에서 첫날밤을 묵게 되었다. 맨해튼의 스타더스트라는 허름한 호텔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이 쉬 오지 않았다.

긴 여행길에 피곤하긴 했지만 바깥 야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였다. 한가득 바구니의 보석을 엎어 놓은 듯한 휘황찬란한 불빛이 딴 세상에 온 듯 황홀했다. 긴 여독에 피곤하셨는지 부모님은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샜다. 야경 때문만이 아니었다.

창 밖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내 귀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 줄 몰랐으나 앰뷸런스가 내는 소리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뉴욕의 밤은 앰뷸런스의 위급한 사이렌 소리가 밤중 내내 그치지 않고 내 머리맡을 횡단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마치도 뉴욕이라는 거대도시가 질러대는 비명 소리처럼 들렸다. 불빛 반짝이는 야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인구수가 비슷한 서울의 밤은 그렇지 않는데 뉴욕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끊임없이 내 뇌리를 치고 달리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 나는 갑자기 무섬증이 생겼다.

뉴욕은 아파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엔 세계의 중심도시로 우뚝 서 있지만 속내는 중환자처럼 누워 고통을 호소하며 비상벨을 연신 누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지금 뉴욕은 그때보다 더 그럴 것만 같다. 뉴스를 보니 이 도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매일 수천 명이 감염되고 수백 명의 시민이 죽어간다고 한다.

나는 프랑크 시나트라가 부른 ‘뉴욕 뉴욕’이라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노래를 좋아하고, 전 세계를 향해 횃불을 치켜든 자유의 여신상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상상컨대 요즘 뉴욕의 밤은 가보지 않아도 처참하게 여겨진다. 눈에 안보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밤새도록 실어 나르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센트럴 파크와 마천루가 보여주던 문명의 탑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 인류가 애써 이룩한 화려한 문명이라는 것이 바이러스의 습격에 맥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니 분노와 함께 서글픔이 밀려온다.

이런 비극이 없다. 멋진 패션을 자랑하던 뉴요커들은 자가격리되고 이름난 명품들로 사람을 유혹하던 상점들은 문을 닫고 밤에 활기를 띠던 왁자지껄한 술집들도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마치 병든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텅 빈 도시 뉴욕을 그려보노라니 잠깐이라도 뉴욕을 위해 대신 울어주고 싶다.

뉴욕 시민들은 밤 7시만 되면 베란다와 창가로 나와 코로나 바이러스와 분투하는 의료진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박수를 치고 도구로 소리를 낸다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밀림 속의 오랑우탄이 답답할 때 가슴을 치면서 뭐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다음날 나를 잠 못들게 했던 모습과는 달리 뉴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로 화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침을 선사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귀를 찢는 듯한 사이렌 소리의 밤과 태양빛에 빛나는 뉴욕의 대비는 딴판이었다.

하루종일 세를 낸 택시를 타고 뉴욕의 명소들을 돌아다녔다. 도시 문명의 최고조에 달한 뉴욕의 모습은 인류가 성취한 높은 이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세계인이 모여드는 도시, 세계 첨단의 문명과 예술을 뽐내는 도시, 그런 뉴욕이 지금 역병의 내습에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어둔 밤을 지내고 깨어난 뉴욕의 모습처럼 하루 빨리 코로나를 물리치고 다시 활기찬 뉴욕으로 돌아오길 소망한다.

이 바람이 어디 뉴욕만을 향하는 것이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1달러에 여섯 개나 주던 주먹보다 더 큰 오렌지, 12달러에 고기 반 국 반이던 양지머리국, 그리고 계단 오르는 것이 힘들까봐 어머니를 따로 실어 올려주던 자연사박물관의 의자형 작은 엘리베이터. 뉴욕은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동경의 도시다.

그 도시가 지금 진짜로 병이 들었다. 낮에도 앰뷸런스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고 한다.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올 스톱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함께 물리쳐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생전 처음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온 뉴욕도 어서 일어나야 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와서 두 번째로 기뻤던 것은 너랑 같이 미국 여행 갔던 일이다.” 첫 번째는 어머니를 만나 결혼한 것이라 하셨다. 뉴욕이 생기를 되찾기 바라는 마음엔 이런 내 개인적인 스토리가 섞여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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