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과도한 불안 속에서
코로나19, 과도한 불안 속에서
  • 문틈
  • 승인 2020.04.08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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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두 달이나 이발을 하지 못했다. 머리가 어수선한 내 모습이 꼭 옛날 더벅머리 머슴 같은 인상이다. 양 옆머리가 귀를 내리 덮고 뒷머리엔 꼬리가 생겼다. 이발을 할 때가 한참 지났다.

이유는 인터넷에서 어느 미용실 직원이 코로나19 확진자라는 뉴스를 보고 미용실행을 포기했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난생 처음으로 거울 앞에서 가위를 들고 머리를 싹둑 했다.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쥐 뜯어먹은 머리 모양 때문이 아니라 늘 가던 미용실에 못가서다. 때가 때인지라 마음속으로 미용실에 미안함마저 들었다. 내가 민감군에 속해서 매우 조심하는 편이긴 하지만 비슷한 두려움 때문에 미용실을 안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원래 잘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지만 지난 두 달여 병원, 마트, 식당 할 것 없이 한두 번 갔을 뿐 거의 발길을 끊다시피 했다. 신문은 많은 상점들이 하루 너댓 손님 오면 끝이라고 보도한다. 편의점 정도만 겨우 손님이 들락거리고 평소 손님들이 북적거리던 가게들 대부분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전한다.

식당, 피시방, 옷가게…, 거의 다. 신문을 안 보아도 그런 사정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 은행에서 보내온 이달치 내 신용카드 사용명세서를 보니 청구액이 엄청 소액이다.

이런 일은 카드 쓰고 나서 처음이다. 한 달에 그 정도밖에 돈을 안 썼다니, 내가 자린고비 생활을 해서가 아니다. 바깥 활동을 하지 않으니 돈 쓸 일이 없었다. 마을버스도 지난 두 달 여 한 번도 타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지인이 자기 사무실에 나와서 도와달란다. 선거 관련 일인데 내가 나왔으면 좋겠단다. 사양했다.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민감군이어서 바깥엔 못나간다 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오가는 동안 알지 못하는 불안하고 복잡한 동선들 사이에 내가 섞여 드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날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낼 수는 없는 일. 이런 심리 상태를 ‘코로나 블루’라고 하던가. 바깥 공기를 쐬어야 살 것만 같다. 답답해서 죽을 맛이다. 하여 마스크를 하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가까운 천변의 길이나 산책하려고 나갔다. 나로서는 대단한 모험을 시도한 셈이다.

개천은 도시 변두리에 있다. 그렇다고 사람이 없을 리 없다. 한길과는 다르지만 두세 사람이 무리지어 저만치서 띄엄띄엄 오는 것이 보인다. 길을 비켜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리자니 너무 티내는 것만 같고 다른 사람들과 스쳐 가는 잠깐 동안 숨을 멈추기로 했다.

이 좁은 길에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어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말을 섞지 않고 숨만 쉬어도 바이러스가 1.5미터를 날아간다는 깨알 정보가 나를 얼어붙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복불복. 세상 일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이 무증상 감염자이고 그 순간 그 사람이 크게 재채기를 했다 한들 또 무슨 방도가 없다. 그저 운에 맡길 뿐이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그 순간 깨달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 그 말이 사실은 옷깃만 스쳐도 운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열어보니 맥이 확 풀린다. 내가 그렇게도 과도한 불안에 휩싸여 조심조심하고 나갔다 온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까싶다.

하버드대 전염병 교수가 앞으로 1년 이내 전 인류의 40퍼센트에서 70퍼센트가 신종 코로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으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증상이 매우 가볍거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상시처럼 외출하며 생활할 것이므로 토착병이 되어 독감과 함께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란다.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든다.

아직 어디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약이나 백신이 나왔다는 소식이 없다. 정작 발원지 중국은 후딱 끝을 내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 나라들은 역병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되고 있다.

스페인에선 급증하는 확진자의 14퍼센트가 의료진이라고 한다. 겁나는 사태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할까. 뭐 1년 간다고? 토착병이 될 것이라고? 그 해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절망감을 안겨 준다.

당장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으면 그대로 안심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몇 달이고 계속된다면 과연 끝 모를 역병 창궐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마음을 달래려고 성서를 보다가 불경을 읽다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한 대목에 꽂혔다.

“자연의 노리개인 우리 인간이 이토록 무서워 떨게 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지?” 이 독백에서 인간의 한계와 지혜를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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