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26회 정약용, 원목(原牧)을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26회 정약용, 원목(原牧)을 짓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20.03.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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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원목(原牧)이란 글을 지었다. ‘목(牧)이란 무엇인가?’를 캐묻는 명문장이다.
1) 그렇다면 원목(原牧)을 읽어보자.

여유당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
여유당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

“목민자(牧民者)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쌀과 옷감을 생산하여 목민자를 섬기고, 또 수레와 말과 하인을 내어 목민자를 전송·환영도 하며, 또는 고혈(膏血)을 짜내어 목민자를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과연 목민자를 위하여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다산은 ‘목민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다.’고 결론부터 내렸다.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 무슨 목민자가 있었던가.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투다가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을, 공정하게 말 잘하는 어른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서야 해결을 보고 사린(四隣)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이름을 이정(里正)이라 하였고, 또 여러 마을 백성들이 자기 마을에서 해결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식견이 많은 어른을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마을이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이름을 당정(黨正)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고을 백성들이 자기 고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고을이 모두 감복하여 그를 주장(州長)이라 하였고, 또 여러 주(州)의 장(長)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 이름을 국군(國君)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나라의 군(君)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 이름을 방백(方伯)이라 하였고, 또 사방(四方)의 백(伯)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는 이름하여 황왕(皇王)이라 하였다. 따지자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목민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해결사로 추대된 자가 이정(里正), 당정(黨正), 주장(州長) , 국군(國君), 방백(方伯),황왕(皇王)이다.
지금 같으면 반장, 이장, 통장, 읍·면·동장, 시 ·군수·구청장, 도지사. 대통령이다.

여유당 편액
여유당 편액

글은 이어진다.

”그때는 이정이 민망(民望 백성들의 요망)에 따라 법을 제정한 다음 당정에게 올렸고, 당정도 민망에 따라 법을 제정한 다음 주장에게 올렸고, 주장은 국군에게, 국군은 황왕에게 올렸었다. 그러므로 그 법들이 다 백성의 편익을 위하여 만들어졌었는데, 후세에 와서는 한 사람이 스스로 황제가 된 다음 자기 아들ㆍ동생 그리고 시종, 가신들까지 모두 제후(諸侯)로 봉하는가 하면, 그 제후들은 또 자기 측근을 심어 주장(州長)으로 세우고, 주장은 또 자기 사람을 추천하여 당정ㆍ이정으로 세우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황제가 자기 욕심대로 법을 만들어서 제후에게 주면, 제후는 또 자기 욕심대로 법을 만들어서 주장에게 주고, 주장은 당정에게, 당정은 이정에게 각기 그런 식으로 법을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그 법이라는 것이 임금은 높고 백성은 낮으며, 아랫사람 것을 긁어다가 윗사람에게 붙여주는 격이 되어, 얼핏 보기에 백성이 목민자를 위하여 있는 꼴이 되고 있다.

지금의 수령은 옛날로 치면 제후들이다. 그들의 궁실(宮室)과 수레와 말ㆍ의복과 음식 그리고 좌우의 최측근과 시종들이 거의 국군(國君)과 맞먹는 상태인데다, 그들의 권능이 사람을 경사롭게 만들 수도 있고 그들의 형벌의 위세는 사람을 겁주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거만하게 스스로 높은 체하고 태연히 혼자 좋아서 자신이 목민자임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 사람이 다투다가 해결을 위하여 가게 되면 곧 불쾌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왜 그리 시끄럽게 구느냐 하고, 한 사람이 굶어 죽기라도 하면 ‘제가 스스로 잘못해서 죽었다.’하며, 곡식이나 옷감을 바쳐서 섬기지 않으면 매질이나 몽둥이질 하여 피를 보고야 말 뿐 아니라, 날마다 돈 꾸러미나 세고 글을 첨삭 수정을 일기 삼아 기록하여 돈과 베를 거두어들여서 논밭과 저택이나 장만하고, 권문귀족ㆍ재상에게 뇌물을 쓰는 것을 일삼아 후일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그리하여 ‘백성이 목민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디 이치에 맞기나 하는가.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다산이 살았던 19세기 초반은 목민자가 백성 위에 군림했고, 그것이 극심하여 1910년 경술년에 조선이 망했다. 지금은 어떤가? 목민자는 과연 백성을 위하여 있는가?

1) ‘원목’의 저술연도는 알 수가 없다. 박석무는 ‘다산이 벼슬하는 동안의 저술’로 보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다산학의 인문학적 가치와 미래 2019.11.15. 기조연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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