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중인 형에게
자가격리 중인 형에게
  • 문틈 시인
  • 승인 2020.03.1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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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먼저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형이 코로나 확진을 받고 자가 격리 상태에서 병상이 나지 않아 집에서 병원 입원 차례를 기다린다니 당혹스럽습니다. 10, 20대 젊은이들에겐 감기처럼 지나가는 병이라고 합니다만 우리처럼 연만한 층은 극히 조심해야 할 병이라고 합니다.

하루 빨리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집안에서 체온계로 열을 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니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열흘째라고요? 많이 걱정되겠습니다. 형은 나흘 전 마트에 한번 갖다 온 후로 발열, 기침이 생겼는데 확진 절차에 사흘이나 걸렸다니 안타깝습니다.

아주 건강한 터라 상상도 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놈의 코로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부지불식간에 일단 감염자와 접촉했다 하면 발현하는 참 괴이한 병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형, 미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나온 의학적 소견들을 보면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위험한 것은 아니라 합니다.

형은 심지가 굳으니 기어코 이겨낼 것입니다. 무엇보다 형은 매사에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형의 무한 긍정의 마음이야말로 코로나에 가장 좋은 약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처럼 기침만 몇 번 나와도 잠깐 얼굴이 달아올라도 금방 걱정으로 내닫는 사람하고는 영 다른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천식이 있고 다른 기저병도 있습니다. 형은 특유의 낙관과 긍정심으로 문제없이 극복할 것입니다.

사실은 나도 거의 자가격리 상태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잠재적 감염자로 간주하고 외부 접촉을 끊고 지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사회적 거리’라지요. 마치 런던탑에 갇힌 죄수처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걷기도 하고 거실에 누워 손발을 올렸다 내리며 요가 흉내를 내면서 지내는 내 모습을 보자니 하루하루 이 한 몸 간수하는 것이 되게 큰 일거리입니다.

어제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아파트 단지나 한 바퀴 걸어볼 양으로 마스크를 쓰고 현관문을 나간 참에 마침 이웃집 아주머니가 마스크를 한 채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내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랫만입니다.” 나는 그 순간 머리끝까지 얼어붙었습니다.

1주일에 한번 쓰레기를 버리려 나갈 때도 최대한 ‘사회적 거리’를 지켜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지근거리에서 맞부딪쳐 그랬나 봅니다. 그때 복잡한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온몸의 신경줄이 팽팽해졌습니다. 문득 나란 사람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웃집과 인사를 하고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쩌다 우연히 나눈 인사 한마디에 코로나를 떠올리며 놀라다니 이 무슨 살아가는 도리입니까. 실제로 같은 아파트에서 확진자 주민과 잠깐 접촉한 바람에 감염된 경우도 속출하고 있으니 인사 예절도 자제하고 살아야 할 지경이긴 합니다.

타인과 마주치면 그 사람의 복잡한 최근 동선들과 만나는 셈이라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동선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타인의 동선들에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면 나처럼 겁많은 사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걱정이 걱정을 낳게 마련입니다. 이 사태가 언제나 끝이 날까요.

지금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공포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더욱이 부인께도 또 얼마나 힘드실지 위로를 전해드립니다. 사실 솔직히 말해 저도 누구에겐가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많이 힘들지요? 좋은 날이 곧 오겠지요.’하는 말. 이러다 지쳐서 지레 병이 날까 걱정됩니다.

바로 현관문 밖에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코로나는 나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현 상황입니다. 형처럼 확진자가 되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천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 일을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도망자처럼 숨어 지내야 한다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뿐입니다.

그러나 형, 이 고난의 때를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다네. 그러나 우리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별을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다소간 의미있게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국의 의료진, 자원봉사자, 국민,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코로나도 머잖아 수그러들 줄 믿습니다. 몸 조리 잘하시고 유튜브로 옛날 코미디도 보며 억지로라도 웃어가며 힘든 시기를 극복하시길 응원합니다.

이 나라에 기어이 봄이 온 것처럼 형이 승리하고 돌아오는 날 만나서 인생살이의 고달픔을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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