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62】 기관귀향(棄官歸鄕)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62】 기관귀향(棄官歸鄕)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3.04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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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는 내 몸이로구나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한다고 읊었던 시 한 수가 생각난다. 무심한 세월이 지나면 했던 행동 모두가 한 바탕의 꿈이 되고 말았다는 성현의 말씀도 생각한다.
퇴계도 벼슬을 그만 두고 한양에서 향리로 떠났던 시문이 있기에 새삼스럽지 않지만 시인도 벼슬을 그만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회를 피력했다. 산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 내가 이리 살고 있으니 오직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는 몸이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棄官歸鄕(기관귀향) / 신숙

밭을 갈다 한낮을 약초 캐다 청춘을
산이 있고 물 있는 산골에 살다보니
영화에 욕심 없이도 살다가를 가누나.

耕田消白日    採藥過靑春
경전소백일     채약과청춘
有山有水處    無榮無辱身
유산유수처     무영무욕신

오직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는 내 몸이로구나(棄官歸鄕)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신숙(申淑:?~1160)인 고려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밭을 갈다가 문득 한낮의 시간을 다 보내고 / 약초를 캐면서 젊은 시절도 다 보내고 말았구나 // 산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 내가 이리 살고 있으니 / 오직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는 몸이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벼슬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로 번역된다.
요즈음처럼 직장에 목을 매고 출퇴근하는 모습보다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면 벼슬도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이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우군은 좌군으로 뒤바뀌고, 때론 좌천과 귀양으로 점철되곤 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알고 처신하지 않으면 귀향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시인은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면서 독실한 농사의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밭을 갈다가 한낮을 다 보내고 나서, 약초를 캐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상당히 이른 나이에 낙향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들에 나가서는 논밭을 갈고 산에 나가서는 약초를 캐며 살았으니 낭만적인 생활을 했다는 선경의 시상이다.

화자는 농사짓는 이 일에 만족하고 있다는 후정後情의 시상 덩이를 채워놓기에 급급함을 보인다. 산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 살고 있으니, 영화도 필요 없고 욕됨도 없이 이렇게 한가하게 지내는 몸이라는 시상의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낙향의 재미다. 누가 건드릴 사람도 없고, 누가 나무랄 사람도 없는 자연 그대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낮 시간 보내다가 젊은 시절 다 갔구나, 산과 내가 있는 곳엔 영화 없고 욕됨 없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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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신숙(申淑:?~1160)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인종 때 명경과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 관직을 옮겨 어사잡단에 이르렀으며, 청렴·충직하기로 이름이 났다. 의종초 시어사 송청과 함께 합문에 엎드려 3일 동안 시사를 논하였으나 회보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면서 병을 구실로 사직하였다 한다.

【한자와 어구】

耕田: 밭을 갈다. 消: 소비하다. 보내다. 白日: 백일. 한 낮을 뜻함. 採藥: 약초를 캐다. 過: 보내다. 靑春: 청춘. 젊은 시절. // 有山: 산이 있다. 有水: 물이 있다. 處: 곳. ~이 있는 곳. 無榮: 영화가 없다. 벼슬을 하지 않는다. 無辱: 욕심이 없다. 身: 몸. 여기에선 자기의 몸이나 처지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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