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61) 산장야우(山庄夜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61) 산장야우(山庄夜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2.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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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자던 새는 아직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는데

자연에서 시상을 얻은 시인은 자연을 아끼는 알뜰한 마음을 간직한다. 비가 오면 메마른 나무들이 쑥쑥 자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벌레들이나 새들은 어찌할까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찮은 지렁이도 이 비를 맞고 꿈틀거리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애지심을 간직하는 인간의 마음이리라.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 이른 새벽에 뜰의 나무를 바라보니 지난 밤 잤던 새가 둥지를 떠나지 않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山庄夜雨(산장야우) / 계림 고조기

어제 밤 송당에는 밤새도록 비가 오고
시냇물의 졸졸 소리 베개의 서쪽인데
새벽에 나무들 보니 아직 둥지 안 떠나.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작야송당우     계성일침서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
평명간정수     숙조미리서


지난 밤 자던 새는 아직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는데(寒松亭) 번역해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계림(鷄林) 고조기(高兆基:?~1157)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젯밤에는 유독 소나무 숲에는 비가 많이 와서 /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베개 머리 서쪽에서 들리고 있네 // 이른 새벽 뜰의 나무들을 바라보니 / 지난 밤 자던 새는 아직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이른 새벽 일어나 한송정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이 시를 보면 유별나게 자연을 아끼는 또 다른 면을 보이게 한다. 한송정이란 시제를 두고 노래한 곡이 몇 곡이 있지만, 잠자는 새까지 생각하는 사상이선 다소 숙연해 진다. 자연과 사람의 합일이란 연결고리를 지어보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요즈음들이 부쩍 자연을 아끼는 풍조이고 보면 더욱 아껴짐을 어찌 할 수 없는 처지겠다.
시인은 한송정을 찾았더니 모처럼 비가 많이 왔음으로 시상의 한 줄기를 우려내고 있다. 어젯밤에는 유독 소나무 숲을 향하여 비가 많이도 와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베개 머리 서쪽에서 들리고 있다고 시상을 일구었다. 꽐꽐 흘러내리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왜 그랬을까? 궁금증은 더해간다.
화자는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흠뻑 맞고 저녁 내내 잠이 들지 못하고, 늦잠을 자고 있을 새를 생각했기 때문임을 내비친다. 이른 새벽 뜰의 나무들을 바라보니, 지난 밤 자던 새는 아직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적인 가정을 보인다. 새에 대한 애착심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소나무 숲 비가 와서 시냇물 소리 들리네, 새벽 뜰의 나무 보니 자던 새들 남아있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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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계림(鷄林) 고조기(高兆基:?~1157)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우복야 고유의 아들로 알려진다. 초명은 당유(唐愈)로 제주 사람이다. 성품은 의롭지 못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였고 경사에 널리 통하였으며 시에도 능숙하였다. 특히 오언시에 뛰어났다. 예종 초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昨夜: 어제 밤. 松堂: 송당. 곧 소나무 골를 뜻함. 雨: 비가 내리다. 溪聲: 시냇물 소리. 졸졸졸 흐르는 소리. 一枕西: 베갯머리의 서쪽. 곧 자고 있는 집의 서쪽. // 平明: 새벽. 해가 뜰 무렵. 看: 보다. 庭樹: 나무가 우거진 정원. 宿鳥: 잠자는 새. 未: 아직 ~하지 않다. 離栖: 둥지를 떠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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