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60) 상춘(傷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60) 상춘(傷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2.1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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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 목숨 임 그리워 죽고만 싶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임이 곁에 있으면 행복해 했고, 그렇지 않으면 상심이 컸던 것을 보면 봄을 속상해 하는 모습을 이해해야만 하겠다. 그래서 흔히 봄은 여인의 계절이라 했다. 임이 없는 여심은 허전해 했고, 임이 떠난 봄은 의미가 없었음을 표현해 내고 있는 시상도 만난다. 유독 봄이 돌아오면 그런 시상은 더했을 것은 분명했으리라. 이 내 마음은 봄이 감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라오, 다만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한 탓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傷春(상춘) / 매창 이계랑

마음은 봄이 감을 슬퍼함이 아니요
다만 사랑의 임 그리워한 탓이라오
세상에 괴로움 많아 꼭 죽고만 싶답니다.
不是傷春病   只因憶玉郞
불시상춘병    지인억옥랑
塵豈多苦累   孤鶴未歸情
진기다고루    고학미귀정


외로운 이 목숨 임 그리워 죽고만 싶답니다(傷春)로 의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매창(梅窓) 이계랑(李癸娘:1573~1610)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것은(내 마음은) 봄이 감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오 / 다만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한 탓이라오 // 티끌 같은 이 세상에 괴로움도 이미 이렇게 많아 / 외로운 이 목숨 임 그리워 죽고만 싶답니다]라는 시심이다.
이 시제는 [봄이건만 속상해서]로 번역된다. 그 녀의 정인이었던 유희경이나, 영원한 시우였던 홍길동의 작자 허균의 문집에 주옥과 같은 그녀의 시문은 물론 그와 관련된 시문이 실려 있어 시상의 깊은 맛을 보게 된다. 임진왜란이란 커다란 변란도 매창의 사랑을 그렇게 앗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화창한 봄이 돌아왔건만 봄이 가는 속이 상함을 시문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시심 속에 화들짝 열리는 봄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봄은 상심으로 변하고 만다. 임이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은 봄이 감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단정하면서도, 다만 그것은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한 탓이라고 자기의 심회를 그대로 노정해 버리고 만다.
화자는 속상하는 봄을 그대로 보낼 수가 없어서 자기의 심회를 견주어 본다. 티끌 같은 이 세상에 괴로움도 너무 많이 다가와 이제는 버틸 수 없는 처지임을 상심해 한다. 외로운 이 목숨을 이제 지탱할 능력도 없고, 부지할 의미까지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에선 꼭 죽고만 싶다는 강한 자기 모습을 보이고 만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이 감을 슬퍼않네 임 그리워 탓한거래, 티끌 세상 괴로움만 임 그리워 죽고 싶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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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매창(梅窓) 이계랑(李桂娘:1573~1610)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기생으로 살아간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부안현에 소속된 관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 기생은 관비 출신 중에서 충원되었던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1610년 서른여덟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한자와 어구】
不是: 이것은 ~이 아니다. 傷春: 봄이 가다. 病: 병되게 여기다. 只因: 다만 ~이 원인이다. 憶: 생각하다. 사랑하다. 玉郞: 옥랑. 사랑하는 임. // 塵: 티끌. 豈: 어찌. 多苦累: 고생이 많다. 孤鶴: 외로운 학. 시인 자신을 나타냄. 未歸情: 돌아가지 못한 정. 죽지 못한 자기의 신세. 곧 ‘죽고 싶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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