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창궐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 조용래 (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
  • 승인 2020.02.05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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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대기자)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 전 국민일보 편집인)

“국내에 중국인들이 150만 명이나 있잖아요. 그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설에 모두 중국에 다녀왔다는데, 정말 큰일이야…. 이제 마스크는 꼭 써야 돼요.”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80세 전후의 여성 한 분이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가린 채 인사말을 나누는 가운데 힘주어 하신 말씀이다. 그는 민낯인 내 모습이 영 마뜩잖았던지 혀를 끌끌 찼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신종 코로나)에 대한 감염증 공포가 한국에서도 본격화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공포와 혐오는 종종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로 퍼 나르게 한다. 중국인 150만 명 국내 체류란 말을 비롯해 그들 모두가 이번 설에 고향방문을 했다는 게 바로 그 경우다.

2018년 11월 1일 기준으로 장기체류자와 귀화외국인을 포함한 국내 거주 외국인주민은 205만4621명, 그 중 절반이 중국인이었다. 불과 1년 남짓 새 중국인 거주자가 50%나 늘었을 리도 없거니와 그들 모두 설 쇠러 고향에 다녀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과장한 억측일 터다.

국내 체류 중인 중국교포들이 고향에 자주 못가는 대신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에 나와 있는 고향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른바 ‘조선족이모’에게 육아를 맡기는 젊은 엄마들과, 그들을 고용하는 식당 등 여러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우려가 작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중국인을 바이러스 유포자로 낙인찍어서는 곤란하다.

억측은 장삼이사들만이 아니다. 지난달 31일 우한에 거주하던 우리 교포들을 정부가 전세기를 투입해 데려왔을 때 격리장소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발한 배경도 미디어의 분별없는 보도 탓이 컸다. A신문은 28일 정부가 격리장소로서 충남 천안의 두 곳을 점찍자마자 이를 서둘러 단독 보도한 데 이어, 29일엔 격리장소가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된 것을 또 다시 특종이라며 보도했다.

A신문의 보도에 이어 B신문 C방송 등도 앞 다투어 같은 내용을 알리면서 아산과 진천 주민들은 크게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주민들과 전혀 상의도 없이 자기네 동네를 격리장소로 삼은 점, 그것도 당초 다른 곳으로 정했다가 갑작스레 아산과 진천으로 바꾼 점 등을 앞세워 그들은 흥분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해당 지역과 상의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당초 특종이랍시고 보도한 A신문이 격리장소 변경이유를 함께 보도하지 않은 탓이 컸다. 격리인원이 배로 늘어나면서 좀 더 큰 시설이 필요했기에 정부가 부랴부랴 장소를 다시 지정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선정․왜곡보도다.

뒤늦게나마 아산과 진천 주민들이 격리되는 중국교포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환영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 잘난 ‘특종 보도’ 탓에 하마터면 중국교포 격리 수용문제가 우리 안의 분열로 번질 뻔 했다. 그야말로 바이러스가 우리의 인식능력까지 뒤흔들려고 날뛰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러스 창궐(猖獗)과 더불어 배제와 차별이 창궐하는 것은 정상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미 2002~03년 사스와 2012년 메르스의 위세를 겪었기에 작금의 신종 코로나 앞에서 공포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공포심을 앞세워 중국 중국인 중국산물품 중국교포 등을 싸잡아 내치는 듯한 태도는 옳지 않다.

창궐이란 못된 세력이나 전염성이 강한 병균이 세차게 일어나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2016년 겨울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대립이 일상화, 극단화됐다. 보수 대 진보, 노․장․청 세대 간, 노사․지역․빈부․남녀 간 갈등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신종 코로나 창궐 이전부터 이미 ‘창궐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컨대 바이러스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예방수칙을 잘 지키고 정부의 방역노력이 끈질기게 이어진다면 사태 수습은 시간문제일 터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적대감, 상대를 마치 원수 대하듯 하는 적개심이다.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의견은 달라도 상대를 배려할 수는 있을 테고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서로 존중할 수는 있는 법이다.

바이러스 박멸과 더불어 창궐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도 함께 청산됐으면 좋겠다. 배제와 차별과 혐오로 내달리는 ‘창궐하는 사회’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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